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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9/11/15
옥스퍼드 대학교와 요한 웨슬리
옥스포드 전경

영국에서 가장 유서깊은 명문대학교는 역시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다. 1906년부터 교육을 시작하여 영미권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랄 수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가 세워진 것은 파리 대학의 유학생들이 귀국하여 런던 근처의 상공 도시 옥스퍼드에 정착하여 대학 도시가 형성되면서 부터였다. 결국 파리 대학이 옥스퍼드 대학을 출범시킨 원형이었고 케임브리지 대학은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데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옥스퍼드의 표어는 라틴어로 ‘Dominus illuminatio mea(주님은 나의 빛)’이다.

옥스퍼드하면 떠오는 라이벌 대학이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다. 둘 다 3년제이고 둘을 합쳐 ‘옥스브리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역대 수상들을 배출해온 ‘영국 지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학교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38개의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져 있고 최초의 칼리지인 유니버시티 칼리지는 1249년에 세워졌으며, 1263년경 베일리얼 칼리지가, 1264년에 머튼 칼리지가 세워졌다.

이 대학 학생들은 강의중심보다 지도교수(튜터)와 대면하는 튜토리얼 수업을 주로 받는다.

옥스퍼드에서는 한때 학생들(Gowner-가운 입는 사람들)과 시민들(Towner)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아 학생과 교수들이 옥스퍼드를 포기하고 케임브리지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옥스퍼드의 대표적인 칼리지로는 베일리얼(Balliol) 칼리지, 머튼 칼리지(Merton),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등의 칼리지가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장학금으로 인정받는 로즈 장학금을 수여하는 유일한 대학이기도 하다. 전체 시의 인구가운데 30%가 대학생들이다.

 26명의 영국총리 배출

널리 알려진 졸업생으로는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와 데이비드 캐머런 등을 포함한 26명의 영국 총리,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전 캐나다 총리 레스터 피어슨, 존 터너, 호주 총리 밥 호크, 토니 애벗, 전 인도 총리 만모한 싱, 파키스탄 총리 줄피카르 알리 부토, 베나지르 부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미얀마 민족민주동맹 당수 아웅산수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철학자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작가 새뮤얼 존슨, CS 루이스, 오스카 와일드, 올더스 헉슬리, 배우 휴 그랜트, 케이트 베킨세일, 마이클 페일린, 영화감독 켄 로치 등이 있다.

한인으로는 전 국무총리 정일권, 전 외무부 장관 이동원, 국회의원 손학규, 박진, 나성린 등이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와 웨슬리 성결운동

 옥스퍼드에서 가장 큰 단과 대학은 크라이스트 처지란 대학으로 가장 오래된 학문인 법학, 의학, 신학이 중심을 이루는 대학이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란 책의 저자가 이 학교 수학교수였고 영화 ‘해리 포터(Harry Potter)’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해 졌다.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연회장으로 나왔던 식당이 바로 이 크라이스트 처지 대학의 식당이었다.

이 대학이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도 요한 웨슬리 때문이다. 크라이스트 처치 예배당 안의 바닥 한 곳에는 웨슬리탄생 3백주년 기념으로 새긴,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가 크라이스트 처지 동문이었음을 보여주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요한 웨슬리는 런던의 차터하우스에서 6년간의 수도원 교육을 마치고 18세 되던 해인 1720년 옥스퍼드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웨슬리는 뛰어난 학업과 경건한 신앙생활로 다른 학생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일생 동안 1주일에 2번 규칙적으로 금식했는데 이같은 웨슬리의 영적 습관은 청소년기 차터하우스 수련을 통해 몸에 밴 것이라고 전해 진다.

요한 웨슬리는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1726년께부터 ‘홀리 클럽(Holly Club)’을 조직, 동료들과 함께 정규적으로 기도하고 성경공부에 힘썼다. 웨슬리 형제의 홀리클럽운동은 옥스퍼드 성내 감옥의 수감자들을 방문함으로써 본격화됐다고 한다.

당시 웨슬리 형제의 엄격한 경건 생활과 홀리클럽모임을 보고 동료들과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질서주의자들(Methodist)’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성결한 생활이 부러워서라기보다는 야유와 비판이 섞인 일종의 '조롱'이었다. 물론 이같은 시선에 웨슬리 형제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감리교를 뜻하는 메소디스트는 바로 이들 홀리클럽에서 비롯된 것이다.

웨슬리는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를 마치고 링컨 칼리지에 들어갔다. 웨슬리는 그곳에서 더 큰 영적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주로 남들과 구별된 경건생활때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학시절 기숙사의 식사규율과 관련, 음식을 두고 갈등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이 대학에 지금까지 보존돼 있는 ‘웨슬리의 방(The Wesley Room)’에는 당시 모임에서 쓰던 성경과 책들이 남아 있고 홀리클럽의 향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옥스퍼드에는 웨슬리를 기념하는 메소디스트 처치도 있다. 뉴인홀 스트리트에 있는 뉴인홀(New Inn Hall)은 1783년 최초로 메소디스트가 회합을 가진 장소이다. 또한 이곳에는 웨슬리가 자주 설교했던 동정녀 마리아 교회가 있는데 이곳에서 웨슬리는 유명한 '마음의 할례'(1733)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1738) '성서적 기독교'(1744) 등의 설교를 했다.

옥스퍼드에서의 요한 웨슬리의 영적 감화력은 링컨 칼리지에서 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웨슬리는 크라이스트 처치 졸업 이듬해인 1726년 링컨 칼리지 특별연구원으로 특채되고 그곳에서 홀리클럽운동을 시작했다. 그후 웨슬리는 2년 남짓한 미국 전도여행에서 영적으로 쓰라린 패배감을 안고 돌아와 다시 링컨 칼리지에 복귀하여 1751년까지 일하게 되었다.

웨슬리가 이곳을 그만두게 된 것은 그의 늦은 결혼 때문. 그 당시 규칙으로는 결혼하면 그 직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웨슬리는 링컨 칼리지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등 사실상 교수 사역 못지않은 봉사를 하는 한편 대내외적으로 꾸준히 홀리클럽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당시의 교회와 사회에 신선한 충격과 영향을 줬다. 이 때문에 웨슬리의 성결운동은 미국 전도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25년 이상의 사역을 해 온 셈이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능력 있는 영성의 사람 요한 웨슬리 때문에 18세기 영국의 기독교는 활력을 되찾고 사회의 도덕적 기강이 다시 회복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조명환 기자]

 

 

 

웨슬리가 공부했던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해리 포터 촬영장으로 널이 알려진 크라이스트처치 식당
옥스포드 대학교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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