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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9/11/15
존 낙스와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캐톨릭 군주 매리 스튜어트 여왕
스코틀랜드의 매리 스튜어트 여왕[위키피디아]

우리는 ‘매리(Mary)'란 여왕이름에 익숙해 있다. 매리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인 고로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라고 숭배하는 카톨릭 여왕에게 많이 붙는 이름이다.

우리는 ‘블러디 매리’라고 신교를 엄청 핍박하여 무자비하게 신교도들에게 피의 숙청을 감행한 잉들랜드의 매리 여왕을 기억하고 있다. 이 매리 여왕은 어머니 캐서린과의 이혼을 위해 캐톨릭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교회를 탄생시킨 헨리 8세의 첫째 딸이다. 캐서린 왕비는 캐톨릭 국가인 에스파냐의 공주였다.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앤 볼린과 눈이 맞은 헨리 8세가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핑계를 잡아 이혼을 하려 했지만 교황청이 말을 들어먹지 않자 이혼을 감행하고 영국국교회를 탄생시켰으니 캐톨릭 측에선 헨리 8세가 반역자인 셈이다.

그가 수많은 여자들을 왕비로 맞아들여 아들 갖기를 원했으나 결국 아들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에드워드 6세가 고작이었다.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6세는 아주 병약하여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맏딸 매리 공주가 뒤를 잇게 되었다. 튜더 왕가에서 나왔으니 흔히 ‘매리 튜더’라고 부른다. 캐톨릭 신도인 어머니를 내 쫓고 신교를 탄생시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었으니 그는 캐톨릭으로 방향을 틀어 대대적인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신교 찬성파를 죽였고 어머니 캐서린의 이혼에 앞장섰던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 등을 숙청했다. 그래서 블러디 매리다.

그런데 또 하나의 매리 여왕이 있다. 이번엔 잉글랜드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여왕이다. 스코틀랜드의 매리 여왕은 사실 잉글랜드의 매리 여왕과 친척이다. 그러니까 잉글랜드의 매리여왕이 헨리 8세의 아버지 헨리 7세의 손녀라면 스코틀랜드의 매리 여왕은 헨리 7세의 증손녀다. 좀 복잡하다. 사실 영국에서도 왕족이란게 그들만의 리그인고로 자기들끼리 다 해먹고 지배한 역사가 아닌가?

매리 튜더가 신교를 핍박했다면 매리 스튜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엔 캐톨릭의 개혁을 외치며 들고 일어선 종교개혁자 존 낙스(John Knox)가 있었다. 이 존 낙스에게 매리 스튜어드 여왕이 KO승은 아니더라도 판정패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캐톨릭 군주가 되었다. 아시다시피 잉글랜드에서 성공회가 탄생했다면 스코틀랜드에선 장로교가 탄생했다. 좀 시간이 지난서 요한 웨슬리에 의해 감리교가 잉글랜드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잉글랜드에 가면 성공회와 감리교의 역사를, 스코틀랜드에 가면 장로교의 역사를 배운다. 모두 캐톨릭에 반기를 들고 종교개혁을 외친 신앙적 선각자들의 희생과 헌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크리스천 위클 리가 주최하는 제2차 종교개혁 발상지 학습여행에서 첫 번째로 방문하는 도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는 매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 여왕의 활동무대였다. 그녀는 우선 화려했으나 비운의 여왕이었다.

우선 생후 6일 만에 왕위에 오른 여왕이니 얼마나 운명이 기구한가?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린 시절을 숨어살다 시피하다 프랑스의 황태자와 결혼하여 나중에 왕비가 되었다. 당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와 에스파냐(스페인)의 눈치를 보는 수준이었고 어느 나라하고 손을 잡아야 마음이 놓이는 때였다. 프랑스는 잉글랜드를 견제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여왕을 며느리로 불러온 것이다. 그렇게 프랑스에 시집갔던 매리 여왕은 남편이 일찍 사망하자 보따리를 싸가지고 스코틀랜드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 스코틀랜드는 캐톨릭 교회와 장로교회와의 갈등이 심각한 때였다.

그는 헨리 스튜어트와 2번째 결혼을 했으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은 낳았다. 그게 제임스 6세. 성경이름 가운데 ‘킹 제임스 성경’이란 이름에 붙는 왕의 이름 제임스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통합왕국의 왕의 이름에서 나왔다.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결혼을 안하고(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뒤를 이어 제임스 1세가 되었다. 제임스가 스코틀랜드 왕위에 오를 때 나이는 겨우 1세. 그 제임스 왕이 매리 여왕의 유일한 아들이었는데 그가 커서 두 왕국을 합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추대된 것이다. 참고로 그 제임스 왕은 성공회를 제외한 다른 개혁 교회를 핍박하여 청교도들이 영국을 버리고 신대륙으로 이민을 결심케 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제임스의 아버지이자 매리의 2번째 남편인 헨리가 살해되었다. 여왕과 사랑에 빠진 보스웰 백작이 범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매리여왕은 스코들랜드 국민들에게 ‘불륜죄’로 찍히기 시작했다. 결국 스코틀랜드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목숨을 연명하고자 잉글랜드로 도망을 가서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제 발로 들어선 죽음의 길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매리를 보자마자 칼라일 성에 감금시켜 버렸다. 혹시 스코틀랜드의 반역세력과 연대해서 자기의 왕위를 넘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무려 18년 동안이나 매리 스튜어트를 유폐시킨 것이다. 아무리 권력이 무섭기로서니 언니뻘인 매리 스코틀랜드 여왕을 그렇게 오랜 동안 가둬 뒀다가 목을 잘라 참수시키다니 . . . 매리 여왕은 캐톨릭을 상징하는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노스햄프튼셔의 사형장에서 비극적인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물론 엘리자베스 1세가 신교를 지지하고 있었고 매리 여왕이 캐톨릭이긴 했지만 수차례 살려달라는 편지를 묵살하고 그녀를 죽인 것이다. 6일 만에 왕위에 오르고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다가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된 후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불륜죄를 짓고 23세에 잉글랜드로 망명을 갔으나 사촌언니에게 붙잡혀 18년 동안 옥에 갇혀 있다 목이 잘려 세상을 마감한 매리 스코틀랜드 여왕의 파란만장한 인생. . . 그가 죽을 때 나이는 41세에 불과했다.

2번째 남편 헨리 스튜어트 사이에서 난 아들 제임스 왕과 어머니와의 상봉은 평생 한번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니 매리 스튜어트는 참으로 참으로 비운의 여왕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통합왕국의 왕이 되어 튜더왕조가 끝나고 영국에 스튜어트 왕조를 열기 시작한 제임스 6세는 비운의 어머니 매리 여왕의 시체를 나중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셔다 놓았다.

그런데 매리 스코틀랜드 여왕의 참수 소식은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2세를 격노케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틈만 나면 제거되기를 바랐던 엘리자베스 1세가 캐톨릭 신봉자인 매리 여왕을 죽인 것은 철저한 캐톨릭 군주였던 펠리페 왕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래서 잉글랜드를 손봐주겠다고 나선 것이 그 유명한 스페인 함대였다. 무려 130여척에 2만 명의 군사, 8천여 명의 선원을 태우고 리스본을 떠나 잉글랜드로 쳐들어 왔지만 그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의 엘리자베스에게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될 줄이야! 당시 유럽 최강을 자랑하던 스페인에게는 굴욕이었다. 잉글랜드는 드레이크란 해적에게까지 작위를 주면서 스페인 함대를 무찌르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결국은 그때부터 시작된 스페인-잉글랜드 전쟁이 잉글랜드의 승리로 기울기 시작하자 영국은 전 세계의 해상권을 손에 쥐는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후 유럽에서는 스페인을 제외하고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개발했으니 그게 바로 미국의 버지니아. 버지니아란 처녀(Virgin)로 살아가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따 온 이름이다. “짐은 영국과 결혼했다”고 선언한 엘리자베스1세가 대영제국의 초석을 다지기는 했지만 매리 여왕을 참수시키는 등 수많은 피의 역사를 통해 그게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스페인-영국 전쟁의 발단은 매리 스코틀랜드 여왕의 죽음이었고 그 매리여왕의 발자취와 함께 존 낙스의 종교개혁의 역사 현장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오는 10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로 향하게 된다.

                                                                                                                       [조명환 기자]

 

 

웨스터민스터 애비에 있는 매리 스튜어트의 무덤
덤바튼 성
훌리루드 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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