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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2/17/21
조명환의 추억여행(6) ‘북부의 아테네’ 에딘버러(Edinburgh)
수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에디버러 성

 

스코틀랜드는 매리 스튜어트 여왕 당시 활동한 존 녹스(John Knox)의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장로교(Presbyterious Church)가 분리되어 탄생된 곳이다. 지금도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의 공식 국교이다.

 

칼빈주의 노선을 표방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의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칼빈주의가 내세우는 직업 소명설 때문. 다시말해 직업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하는 직업론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스코틀랜드 국교인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 또 하나는 존 녹스의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자유 교회가 있다. 그렇다고 장로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 성공회도 있고 로마 캐톨릭교회, 감리교회, 오순절교회 등도 존재한다.



 
에딘버러는 장로교의 고향이다. 장로교 창시자 존 낙스가 목회하던 세인트 자일스 교회당의 모습


 

지난해 스코틀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는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국민 대다수는 독립에 뒤따르는 후유증을 염려했던지 그냥 영국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기를 원했다.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브레이브하트(Braveheart)''''''''의 배경이었던 배넉번 전투에서 잉글랜드에 압승을 거둔 스코틀랜드는 1314년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제임스 1세란 이름으로 영국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자연스럽게 두 나라는 또 연합국가가 되었다. 그 뒤 스코틀랜드는 독립국 지위를 누리지 못하다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국민당이 승리하면서 독립안을 국민투표에 붙였지만 결국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존 낙스가 태어난 마을 해딩턴. 저 다리 뒤에 낙스가 태어난 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이다.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이다. 스코틀랜드는 장로교, 잉글랜드는 성공회가 국교회다. 스코틀랜드는 게일어란 독자 언어도 갖고 있다. 인구도 잉글랜드의 1/10의 수준이니 늘 잉글랜드에 대한 뿌리 깊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12제자 중 안드레가 수호성자로 알려져 있다. 스코틀랜드의 국기엔 그래서 하늘색 바탕에 옆으로 누워 있는 하얀색 안드레 십자가가 있다.

 

이 나라는 우선 골프가 시작된 나라이고 스카치위스키의 원조이자 민속악기 백파이프, 타탄으로 만들어진 전통의상 킬트 등으로 세계에 너무 많이 알려진 나라다.

 
 
존 낙스의 생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오픈되어 있다 




그 가운데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2번째로 큰 도시로서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북부의 아테네’라고 불린다.

 

비가 많이 오고 건물은 고풍스럽다 못해 우중충하고 그래서 이 도시는 습한 초저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여름철엔 최고의 연극과 댄스, 오페라와 거리 퍼포먼스가 곳곳에서 벌어져 도시전체가 마치 갤러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예술의 전당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도시에는 수많은 동상들이 서 있어 이 나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데 우선 이 도시 출신의 데이빗 리빙스턴의 동상이 있다. ‘검은대륙의 성자’란 별명을 가졌던 리빙스턴은 바로 에딘버러 출신으로 로버트 모팻의 영향을 받아 아프리카 의료선교사로 평생을 헌신했다.

 

 
여행객들을 위해 이 나라의 고유악기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모습 





월터 스콧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존심이다. 에딘버러에서 태어난 문학가이자 역사가인 그를 추모하기 위해 거대한 스콧 기념탑이 1846년에 세워졌다. 유명한 철학자, 사상가였던 데이빗 흄의 동상도 로얄 마일에 서 있다.

 

에딘버러는 ‘해리포터(Harry Potter)’의 탄생지로도 유명하다. 작가 조앤 롤링은 정부보조금을 받는 이혼한 가난뱅이 작가였다. 난방비가 없어 집이 너무 추워 커피 한잔을 주문해 놓고 낮 시간의 대부분을 ‘엘레펀트 하우스’란 카페에서 보내며 해리 포터 초안을 집필했다. 그 가난뱅이 작가는 지금 억만장자가 되어 세계의 문화 아이콘으로 군림했으니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엘레펀트 하우스 카페 유리창에는 ‘해리포터의 탄생지’란 사인이 붙어있고 이 카페에서 커피한잔을 주문하려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영국국교회의 탄압에 저항하던 언약도들의 참수터. 크리스천 위클리 주관 종교개혁 발상지 여행 참가자들이 참수터를 돌아보고 있다 




에딘버러의 상징은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이다. 캐슬 록이란 바위산 위에 세워져 있는 이 고성엔 12세기 초기의 건축물인 세인트 마가렛 예배당이 있고 지금도 행사용으로 주둔부대가 배치되어 있다.

 

에딘버러 성에서 홀리루드 궁전으로 연결된 자갈길을 ‘로얄마일’이라고 부른다. 에딘버러에서 가장 오래된 길. 이 길에는 에딘버러를 대표하는 유명한 건축물과 저택들이 즐비하고 성 자일스 성당과 존 낙스의 생가도 이 길에 있다.

 

조약돌이 쭉 깔린 로얄마일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홀리루드 궁전은 파란만장한 스코틀랜드의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다. 메리 여왕이 영국 왕이 된 제임스 1세(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낳은 곳이 이곳이고 메리 여왕의 남편 단리 왕이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여왕의 비서였던 데이빗 리지오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곳도 이곳이다. 지금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여름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국교회의 탄압에 저항하던 언약도들의 참수터. 크리스천 위클리 주관 종교개혁 발상지 여행 참가자들이 참수터를 돌아보고 있다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를 이 카페에서 썼다고 한다. 일약 에딘버러의 관광코스가 되었다 

 

존 낙스(John Knox)는 누구인가?

 

존 낙스(John Knox, 1514~1572년)는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장로교 창시자이다. 그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부였으나 칼빈주의를 추종하면서 당시 스코틀랜드의 ‘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로마 가톨릭 신도인 매리 여왕과 투쟁을 하면서 장로교를 스코틀랜드에 정착시켰다.

 

개혁 신학의 기초를 존 칼빈이 세웠다면 장로교의 영성과 목회적 기초는 존 낙스가 세운 것이다. 그는 위대한 신학자였지만 동시에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매리 여왕조차도 그의 기도를 두려하면서 "백만 군사보다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고 고백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하나님께 “스코틀랜드를 주시든가 아니면 내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가까운 해딩턴(Haddington)에서 태어났다. 크리스천 위클리가 주최하여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제2차 종교개혁 발상지 학습여행 첫 코스로 에딘버러를 선택한 것도 바로 존 낙스를 찾아가기 위함이다.

 

14살 때 낙스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첫 순교자 패트릭 해밀턴이 화형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 후 조지 위샤트(George Wishart)를 만나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위샤트는 존 낙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6세기 스코틀랜드 교회는 오랜 동안 로마교회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성직자들과 교회의 주교, 수도원장, 수사들은 무지에 빠져 있었다.

 

성경에 바탕을 둔 설교는 사라졌고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만이 구원에 필수적이며, 죄 사함은 미사의 제물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고 배웠다. 그들의 그릇된 삶이 그릇된 교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존심 월터 스콧 기념비




16세기 초 쯤 위클리 파의 가르침과 존 후스의 개혁사상이 스코틀랜드에 들어오게 되고 또한 윌리엄 틴데일의 신약 성경이 글라스고 지방에 유포되면서 개혁자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성경을 전하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개신교라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는 성경읽기를 금지하는 법률이 통과되었고, 윌리엄 틴데일이 번역한 신약성경을 금서로 지정하였다.

 

이런 암울하고 타락한 시대를 목격한 존 낙스의 가슴에 교회 개혁의 싹이 트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각성의 불을 지피게 되었다.

 

존 낙스의 종교개혁은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었고, 스코틀랜드를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낙스는 세인트 앤드루스 성에 포위되어 포로로 잡혀있기도 했다. 영국 왕 에드워드 6세의 도움으로 노예선에서 풀려나긴 했지만 그는 전국을 순회하며 교황의 추악한 삶을 폭로하고 카톨릭 교회의 교리와 교회법을 비판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6세가 사망하고, 캐톨릭 교회 추종자인 매리 여왕이 왕위에 오르자 즉시 개신교 박해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목회자들이 처형되었다. 낙스는 매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 영국을 떠나 캘빈이 있는 제네바로 향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교회 당국은 나중에 낙스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사르고 이단으로 정죄했다.

 

낙스는 칼빈이 목회하는 제네바 교회 옆 건물에서 약 200여명의 영국 피난민들을 섬기는 목회자로 활동했다. 그는 교회 직분을 목사, 장로, 집사로 나누고 평등과 자율과 연합을 근간으로 한 장로정치를 시행했다. 낙스는 제네바에서 1556-1559년 까지 영어 사용 난민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말씀을 전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두 여왕을 종교를 탄압하는 ‘괴물’이라고 비판하면서 동역자들과 함께 성경전체를 새롭게 번역했다. 그것이 바로 1560년에 출간된 ‘제네바 성경’이다.

 

제네바 아카데미의 영향을 받은 낙스는 복음적 교리들과 제네바의 종교개혁 원리를 가지고 12년 동안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1559년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당시 교회는 카톨릭 일색이었지만 낙스는 스코틀랜드 개혁주의 운동에 앞장섰다. 스코틀랜드에 팽배한 미신과 우상 숭배, 폭정을 제거할 것을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에는 항상 활기와 박력과 능력이 넘쳤으며, 솔직한 말과 담대한 용기,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낙스의 설교의 핵심 교리는 선택과 칭의의 교리와 그리스도의 보혈이었다.

  
에딘버러 성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아름답다



존 낙스는 개신교회란 이단을 박멸하고 옛 카톨릭 왕국을 재건하려던 매리 여왕에 맞서 세인트 자일스 교회(St Giles'''''''' Catheral)강단에서 복음주의 교리를 주장하고, 로마교회를 반대하는 설교를 하면서 로마교회와 교황제도를 적그리스도라고 비판했다.

 

매리 여왕의 소환을 받은 낙스는 여왕 앞에서 로마교회를 창녀라고 부르면서 로마교회는 교리와 관습에서 벗어나 온갖 영적인 간음으로 인해 완전히 더럽혀져 있다고 서슴없이 주장했다. 세인트 자일스 교회에서 낙스의 설교는 청중을 사로잡았고 회중들은 성경적인 개혁 운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일꾼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스코틀랜드에 대 각성 운동과 영적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

 

1560년 8월, 드디어 스코틀랜드에 종교개혁의 날이 찾아 왔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교황의 권위를 배격하고 교황의 관할권을 폐지했다. 카톨릭 미사 집전을 금지하고, 이를 세 번 이상 위반할 시 사형에 처하기로 했다. 낙스와 다섯 명의 개신교 사역자들이 신조작성위원회를 구성하여 4일 만에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The Scot Confession)''''''''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1560년 의회는 총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를 국가의 신조로 채택했다.

 

이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은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나오기 까지 스코틀랜드 교회의 교리적 표준이 되었다. 이어 1561년 12월 5일 낙스는 5명의 목사와 36명의 장로와 함께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를 조직, 스코틀랜드 역사상 최초의 장로교 총회가 시작됐다.

 

스코틀랜드는 존 낙스의 개혁에 힘입어 개신교 국가로 변하여 갔고 지구상에서 가장 칼빈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가 되었다.

 

낙스는 1572년 11월 24일 에딘버러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회심 이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낙스는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개혁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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