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Logout
213.383.2345
여행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4/18/18
[조명환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기](4) 통곡의 벽(Wailing Wall)

통곡의 벽은 현재 유대교의 최대 성지이다. 제2성전의 마지막 유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전산(Temple Mount)에 남겨진 60m의 벽을 말한다.

그러니까 웅장함을 뽐내던 제2성전을 증축한 헤롯의 성전을 향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3:37이하)"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던 그 시절의 돌담(지하 17단과 지상 7단)이 남은 흔적이다. 헤롯 성전은 주전 20년경에 건축되었다.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은 주후 70년에 성전을 파괴한 후, 이 벽만 남기어 후세에게 로마군의 위력을 과시하려 했다. 로마 시대의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올라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한번 씩 허락되어 이 곳에 와서 성전 파괴와 방랑하는 유대 민족을 위해 통곡하였으므로 `통곡의 벽`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7년 6월 전쟁의 승리로 근 2000년 만에 전 세계의 유대인 수백만이 연중 찾아와 순례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 종교적 중심으로 숭배 받는 곳이 되었다. 6월 전쟁전에는 이 통곡의 벽을 포함한 동 예루살렘이 요르단 영토라 유대인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이스라엘 군인의 삼엄한 소지품 검문을 통과하여 광장에 들어서면 곧바로 황금빛 이슬람 사원(Dome of Rock)의 웅장한 건물 아래의 담벼락과 마주한다.

통곡의 벽은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북쪽은 남자들이, 그리고 남쪽은 여자들이 기도하는 장소이다. 이곳에 들어가는 모든 남자들은 ‘키파’라고 하는 조그만 모자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여자는 어깨와 무릎이 드러나지 않도록 가려야 한다. 매일 24시간 개방되어 있지만 매주 금요일 오후에 시작되는 안식일 이후부터는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시간이라 이때만은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통곡의 벽을 방문해 간절한 기도문을 벽에 꽂는다.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교황, 트럼프 대통령도 이곳을 방문했다.

유대인들은 옛 성전 가까운 곳에서 일생일대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통곡의 벽에서 성인식을 하고 독립 기념일이나 군인 선서식 등도 통곡의 벽에서 치른다.

 

솔로몬이 건축한 제1성전

 

통곡의 벽이 있는 곳에 세워졌던 최초의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한 제1성전이었다.

이 제1성전은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957년 솔로몬 왕이 처음 세운이래 수 차례 걸쳐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였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는 이슬람의 바위의 돔(Dome of Rock) 사원이 건축되어 있고, ‘성전의 뜰’ 자리에는 ‘알 아크사 모스크’가 세워져 있다. 통곡의 벽만이 유대교 성전의 잔해로 현존하고 있다.

 

제2성전은 일명 스룹바벨 성전

 

솔로몬 성전은 기원전 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는 관용 정책을 펴서 바벨론으로 끌려온 유대인 포로들을 이스라엘로 돌려보냈고 성전도 재건하도록 해주었다. 당시 성전을 재건할 때 유대의 총독은 유다 왕실의 후예인 스룹바벨이었다. 해당 시대를 기록한 구약성서는 에즈라와 학개가 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 사람으로서 성전 재건과는 큰 상관이 없다.

이렇게 세워진 성전을 제2성전 또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한다. 사이러스 대왕의 도움으로 재건되기는 했지만,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훨씬 축소된 규모였다.

 

증축된 제2성전 혹은 ‘헤롯 성전’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 나오실 때에 제자 한 사람이 "선생님, 저것 보십시오. 저 돌이며 건물이며 얼마나 웅장하고 볼만합니까?" 하고 말하였다(마태13:1;공동번역). 여기 마태복음에 나오는 성전이 바로 헤롯성전이었다.

 

페르시아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하고, 알렉산더 사망 후 제국이 사분되었다. 이스라엘은 셀레우코스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안티오코스 4세는 제2성전 안에 신상을 세우는 등 유대인들에게 모욕을 주었다.

이에 대한 반기로 일어난 마카비 혁명으로 제2성전은 복구되었다. 마카비 혁명으로 수립된 하스모니아 왕조는 내부 분열로 자멸에 이르고, 로마제국의 지원을 받은 헤로데가 유대의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이 사람이 바로 헤롯 대왕.

헤롯은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메꾸기 위해 성전을 증축했다. 헤로데는 정통 유대인이 아닌 이두메, 즉 에돔 출신이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으로 먼 과거에 갈라진 민족이라서, 아주 다른 민족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이를 `헤로데 성전`이라고 한다. 흔히 제3성전이라고 하지만 유대교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면 제3성전은 결코 아니다. 헤로데는 재건이 아니라 증축을 했기 때문이다. 헤로데 성전은 로마인과 유대인 간의 갈등 때문에 벌어진 유대 전쟁 당시 타이터스 장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유대인들의 재봉기를 막기 위해 그들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종교적 요소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예루살렘과 성전을 잃은 유대인들은 안식처를 잃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니 이를 유대인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지금은 성전은 유적도 거의 없고, 모리야 산을 사각으로 감싼 바깥벽들만 남았다. 그 가운데 서쪽 벽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솔로몬이 첫 성전을 봉헌하며 "이곳에서 바치는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십사" 청했기에(1열왕 8:30), 유대인들은 지금도 성전과 가까운 서쪽 벽으로 모이고 있다.

 

템플 마운트(Temple Mount)는 이-팔 분쟁의 성지


템플마운트는 이슬람 3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알 아크사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위치한 곳이자 유대인들에게는 솔로몬왕의 예루살렘 성전, 즉 제1 성전이 세워졌던 곳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이슬람교도가 절대다수인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이 주축인 이스라엘은 이곳을 종교와 국가의 상징으로 간주하며 팽팽한 기 싸움을 벌여 왔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이 이 성지마저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탓에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는 양측의 충돌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성지`로 인식돼 온 역사적 배경이 됐다.

이슬람교도들은 이곳을 이슬람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가 서기 7세기에 승천한 곳으로 믿고 하람 알샤리프(신성한 안식처)로 부르고 있다. 당시 이곳을 통치한 이슬람교도는 무함마드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템플마운트를 종교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팔각형의 `황금 바위 돔`(또는 바위사원, Dome of Rock)과 함께 알아크사 모스크를 세웠다. 이곳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의 3대 성지로 꼽힌다.

팔레스타인은 이런 배경을 지닌 템플마운트에 종교적, 국가적 상징성을 부여해 동예루살렘을 장차 팔레스타인 독립국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슬람의 주요 성지로 간주하는 까닭에 서안과 가자지구는 물론 이슬람권 국가인 요르단과 레바논 무슬림 공동체에서도 이스라엘의 성지 통제를 규탄하는 시위가 자주 열렸다.

반면 이스라엘은 템플마운트를 둘러싼 `통곡의 벽`이 있는 이곳을 유대교 최고 성지로 여기며 예루살렘 지배권을 확고히 하고 있다.

동예루살렘 내 성지의 주권문제는 지금도 이-팔 간 평화협상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템플마운트를 둘러싼 이 지역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한 뒤 안장되었던 묘지에 세워진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성지이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대 종교의 성지가 겹쳐 있어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는 늘 종교간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통곡의 벽에서 기념촬영
통곡의 벽을 지키는 이스라엘 여군들의 표정이 밝다
정결예법에 따라 손을 물 주전자에 담아 씻는다
통곡의 벽에 들어가기 위해선 머리에 키파를 써야 한다
키파를 쓰고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필자
List   

The Christian Weekly
3700 WILSHIRE BLVD. #755
LOS ANGELES, CA 90010
TEL. 714.383.2345
Email. cweeklyusa@gmail.com
COPYRIGHT © 2015 THE CHRISTIAN WEEK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