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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1/02/16
제3차 종교개혁 발상지 학습여행 화보(4)
종교개혁의 주역 마틴 루터를 찾아서 . . . 독일
바르트부르크 성은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번역한 곳이다

스위스 취리히를 거쳐 우리는 마침내 독일에 들어섰다. 마틴 루터의 나라 독일. . . 루터를 소환하여 그의 주장을 꺾도록 강요한 제국회의가 열린 곳이 보름스(Worms)였다.

보름스 대성당은 네 개의 둥근 탑과 두 개의 큰 돔으로 이루어진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5세는 1521년 이곳 보름스에서 제국회의를 열었다. 황제는 루터에게, 신변안전을 약속하고 이 회의에 나와 심문을 받으라는 소환 명령서를 보냈다.

카톨릭 사제이자 비텐베르크대 성서학 교수였던 루터가 독일 황제의 소환을 받고 보름스에 도착해 제국회의장에 선 것은 1521년 4월 17일이었다.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성교회에 붙인 비텐베르크에서 보름스까지의 거리는 700여㎞. 한 달은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루터는 왜 그 험난한 길을 자처했을까?. 그리스도인은 돈을 주고 산 면죄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義)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는 것을 ‘성서를 통해’ 깨달은 루터는 면죄부를 팔고 있는 교권에 맞서 ‘성서의 진리’를 전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그곳에 갔다가 체코의 얀 후스처럼 화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극구 말리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루터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얀 후스는 불태웠을지 몰라도 진리는 불태우지 못했소. 지붕의 기왓장 만큼이나 보름스에 많은 악마들이 있을지라도 나는 그곳에 가겠소.”

루터가 작곡한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의 3절 가사,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란 이 가사는 보름스를 향하는 자신의 비장함을 표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름스 제국회의가 열렸던 당시 보름스 인구는 6천 명이었지만, ‘루터의 재판정’엔 무려 1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1521년 4월 26일 루터는 보름스를 떠났다. 제국의회 마지막 날인 5월 25일, 황제 칼5세는 루터를 파문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보름스 칙령을 발표하였다. “루터는 이단자이므로, 아무도 그를 자기 집에 들이거나, 음식물을 주지 말고, 이야기도 나누지 말며, 그 어떤 도움도 베풀지 말라. 만일 루터를 보거든 잡아서 재판정에 넘겨야 한다. 그리고 루터를 따르는 자는 벌을 받음을 물론, 누구든지 루터의 말을 전하거나 그의 저작을 가지고 있거나, 팔거나, 베껴 쓰거나 인쇄하는 자도 벌을 받을 것이다.”

이로 인해 루터는, 생명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위기에 처하지만, 오히려 독일 안에서는 루터를 지지하거나 동정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져 갔다.

보름스를 떠나 비텐베르크로 돌아가던 루터는 납치당하여 행방불명된다. 그러나, 이 납치는 위장된 것으로서 루터의 신변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당시 작센의 영주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꾸민 것이었다. 루터는 아이젠나흐의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들어가, 융커 외륵(Junker Jörg)이란 가명으로, 수염을 기르는 등 변장하고 지내게 된다.

현재 제국 회의가 열렸던 주교의 뜰은 현재 보존되어 있지 않다. 보름스 대성당의 잔디밭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성당에서 5분 거리에 세계에서 가장 큰 루터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보름스의 루터공원

 

이 공원은 1868년 리첼이란 사람이 만들었는데, 중앙의 루터를 둘러싸고 이태리의 발데스(1184-1218), 영국의 위클리프(1320-1384 화형당함), 체코의 후스(1370-1415 화형당함), 이태리의 사보나롤라(1452-1498 화형당함) - 종교개혁운동의 선구자 네 사람의 조각상과, 작센의 영주 프리드리히, 헤센의 영주 필립과 로이힐린, 멜랑히톤 등 루터의 협력자였던 사람들의 조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루터의 조각상 밑에는 루터가 제국회의에서 말했다고 전해지는, “나는 여기 서있습니다. 나는 다른 것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란 말이 새겨져 있다.

 

바라트부르크 성(Wartburg)


루터는 신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도피했다. 그곳에서 마르틴 루터는 독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기록되는 ''''성경 번역''''에 착수한다. 그의 독일어판 성경은 1522년 9월에 출판되었다. 그래서 ‘9월 성경''''이라고 부른다. 이 번역 작업은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만이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 성서 지배 구조에 시달린 독일 민중에게 ''''독일어 성경''''이라는 그야말로 ''''복음''''을 내린 일이 되었다. 또한 동시에 그의 번역 작업은 근대 독일어의 표준이 되기도 했다. 독일어 문법과 어휘와 발음의 체계가 그의 독일어판 성경으로 일차적인 정리를 본 것이다. 루터의 ''''어문 정리''''는 근대 독일의 문학, 음악, 건축 등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바르트부르크 성은 1999년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루터가 저술에 몰두한 공간은 소박한 나무 책상과 의자가 전부인 한 평 남짓의 작고 낡은 방이다. 이곳은 현재 루터방(Lutherstube)이란 이름으로 여행자들에게 공개 되고 있다.

 

보름스에 있는 루터 공원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기념촬영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교회당 앞에 서 있는 바하의 동상 앞에서
아이제나흐에 있는 루터하우스. 왼쪽에 보이는 이 집에서 루터가 유소년 시절 학교를 다녔다
루터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던 아이제나흐의 성 게오르겐 성당
에르푸르트에 있는 성 어거스틴 수도원. 루터가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보름스 대성당. 루터가 제국회의에서 심문을 받은 곳이지만 그 제국회의 자리는 보존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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