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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0/07/15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Wittenberg)
루터가 95개 반박문을 써 붙인 비텐베르크 성 교회

비텐베르크는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도시.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곳으로서 ‘루터의 도시’란 별명으로 통한다.

루터가 95개 논제를 문에 써 붙인 캐슬 교회, 루터가 강론한 시립 교회, 루터가 살았던 수도원 등이 남아 있으며, 이들 종교개혁 관련 유적지들은 루터의 고향 아이슬레벤의 유적지와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비텐베르크 대학교는 할레의 대학교와 합병하여 현재 할레에 있는 할레 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교로 남아 있다.

 

마르틴 루터와 비텐베르크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사제이자 신학자였던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당시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 등 문제점을 지적한 ''95개조 명제''를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 문에 붙였다. 교황청은 진노했고 신성로마제국은 물론 유럽 전역으로 ''사건''은 번져갔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오는 2017년이면 루터의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는다. 이 특별한 해를 기념하기 위해 종교개혁 관련 지역들은 2008년 9월부터 ''10년 준비 사업''에 착수했다.

종교개혁의 전주곡은 루터보다 100여 년 앞서 체코 출신의 얀 후스(1369~1415)가 먼저 울렸다. 그는 면죄부 판매 중단을 주장하다 콘스탄츠공의회 의결로 1415년 화형 당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체코 프라하 광장 한 가운데에 있는 동상이 바로 얀 후스다. 처형 당시 후스는 자신의 이름이 체코어로 ''거위''를 뜻하는 것에 빗대 "지금 당신들은 거위 한 마리를 태워 죽이지만 백 년 뒤 백조가 나타나리라"는 예언 같은 유언을 남겼다. 실제로 100년이 지난 1517년에 ''백조''처럼 루터가 나타났다.

독일 작센 주 라이프치히에서 차로 1시간 반 달리면 ''루터의 도시(Lutherstadt)'' 비텐베르크에 닿는다. 인구 2만 명의 소도시지만 루터가 ''95개조 명제''를 붙였던 시내 중심부 비텐베르크 캐슬교회를 방문하는 순례객은 연간 20만 명이 넘는다.

1524년 카톨릭 성당에서 루터교 교회로 전환됐고 당시 루터의 논제는 동판문에 각인돼 영구히 남아 있다. 문 상부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 그림은 보통 그림과 달리 눈을 뜬 채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형상이다. 교회의 각성과 개혁의 바람을 은유한다.

비텐베르크 캐슬 교회는 종교개혁의 시작과 전개과정을 보여주며 신앙과 믿음, 개혁을 낳은 ''정신적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캐슬교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루터의 참나무''가 있다. 루터가 1520년 교황청으로부터 받은 파문장을 불태운 후 참나무를 심었던 현장이다. 근처에 루터가 살던 집은 ‘루터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성직자의 독신 수도를 반대한 루터는 수녀였던 카트리나 폰 보라와 결혼해 이곳에 살았다.

박물관에서는 작센 주의 궁정화가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루터의 초상과 제단화, 당시 판매됐던 면죄부, 종교개혁 확산에 쓰인 판화 등의 자료를 볼 수 있다. 파문장을 불태운 루터는 하이델베르크와 라이프치히 등지에서 신학논쟁을 벌이며 신앙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름없는 젊은 사제의 외침은 처음에 그다지 반향이 없었으나 점차 확산되면서 결국 1521년 독일 서부 보름스에서 제국회의가 열렸다. 보름스대성당에 불려온 루터는 성당 뒤편의 제국회의장에서 황제 카를5세와 선제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루터는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도우소서(Ich stehe hier, helfe mir, Gott!)"라는 말로 신념을 지켰다.

목숨까지 위태로진 루터는 그를 지지하던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도움으로 구출됐고 루터는 신분을 숨긴 채 보름스에서 270km 떨어진 아이제나흐에서 숨어지냈다. 루터가 이 지역 외곽 바르텐부르크 성에서 헬라어로 된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덕분에 성경은 성직자의 전유물에서 평신도들에게까지 보급됐고 종교개혁의 정신은 빠르게 확산됐다. 그가 집필하던 책상과 작은 방은 지금까지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성경 번역을 끝내고 1522년 비텐베르크로 돌아온 루터는 평생 종교개혁 정신을 전파하다 고향인 아이스레벤에서 생을 마쳤다.

 

루터의 동지이자 동반자 멜란히톤

루터의 유적지에 가면 늘 루터와 함께 서 있는 인물 멜란히톤. 루터의 뒤에서 도우며 싸움보다는 중재를 시도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루터가 죽은 후 당연히 리더가 되어야 했음에도 너무 유약하다는 이유로 배척을 당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멜란히톤은 1497년 2월 독일 남부 팔츠 지방의 브레텐(Bretten)에서 태어났다. 그는 무엇보다 천재적인 학자로 알려졌는데, 12세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 수사학 그리고 천문학 등을 배웠고, 무엇보다 헬라어 학자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는 21세 때인 1518년 헬라어 문법책을 출간하였는데 이 책은 18세기까지 유럽에서 교과서로 사용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518년은 루터가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초조하게 심문을 기다리고 있을 때 21살의 멜란히톤은 비텐베르크 대학 헬라어 교수를 시작했다.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뒤 심문을 받기 위해 로마 교황청 아우구스부르크로 소환되어 와 있었던 루터는 초조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비텐베르크 대학의 어린 교수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나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아 죽는다면 후회는 없다네. 그러나 그대와의 말할 수 없이 달콤한 교제가 중단되는 것은 가장 견디기 어렵다네.”

루터가 죽음보다 관계가 끊어질까 더 두려워했던 이 젊은 교수가 바로 멜란히톤이었다.

멜란히톤은 루터 못지않게 종교개혁의 중요한 인물로 상징되는데, ‘루터 도시’ 비텐베르크 광장 앞에 가면 루터 동상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또 하나의 동상이 멜란히톤의 동상이다.

루터는 멜란히톤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도구’이자 ‘나의 가장 소중한 필립’이라 부르곤 했다. 멜란히톤은 루터교의 신학적 입장과 교리를 기초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루터 유적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

루터와 관련된 비텐베르크 유적들은 거의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있다.

▷아이슬레벤의 루터 생가(Luther''s birthplace, 1483)-이곳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타운하우스이지만 상당량 복원되었다.

▷메벤의 루터 임종의 집(House in which Luther died, 1546)-현재 루터기념물기구의 박물관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비텐베르크의 루터 홀(Luther Hall)- 원래는 16세기 초에 세워진 수도원의 일부로 루터가 생전에 거주지로 사용하였다. 3층 건물이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비텐베르크의 멜란히톤의 집(Melanchthon''s house)-인문주의자 멜란히톤이 살았던 주거지이다. 1536년에 전형적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좁은 3층 건물로, 3분할된 반원 아치형의 지붕이 있다. 각 방의 내부 배치는 원상태 그대로이고, 다른 기념물들과 달리 16세기적 성격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멜란히톤과 관련된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비텐베르크의 타운 교회(Town Church)-이 교회는 구시가지 중심부의 마르크트 광장 근처에 있으며, 2개의 거대한 탑이 있는 후기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메인 제단이다. 메인제단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부자(父子)의 작품이며 루터와 멜란히톤의 도해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다.

▷비텐베르크 성 부속성당(Castle Church)-우뚝 솟은 성은 중세 도시의 서쪽에 있으며, 성당의 첨탑은 건물의 북서쪽 모서리에 있다. 19세기에 병영으로 사용되면서 성의 원래 특성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성당은 루터 시기의 모습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성당은 동쪽 애프스(Apse)가 있는 긴 바실리카 구조물인데, 후기 고딕 양식의 독일 할렌키르헤(Hallenkirche, 세 제단의 높이가 같은 고딕식 교회당 건축의 형식)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건물 출입은 상징적 중요성을 이유로 서쪽 문을 통해 한다. 북쪽 면에는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는 유명한 ‘테제의 문’이 있다. 1499년에 성당이 처음 건설되었을 때 만들어진 첨두아치에는 건축연도가 새겨져 있다. 문 주변 장식에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조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청동문에는 ‘95개조 논제’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루터와 멜란히톤은 이 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조명환 기자]

이곳에 95개조 박박문을 써 붙였다
비텐베르크의 마르크트 광장. 루터와 멜란히톤의 동상이 서 있다
비텐베르크 성 교회에 있는 루터의 무덤
아리슬레벤이 있는 루터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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