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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1/02/19
요르단에서 전하는 이야기(상)
성경의 땅 요르단에서 이라크 기독교난민들을 돕는 한인열방교회
필자 황외석 목사 부부

뭔가 커다란 구멍이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공부하던 세계사 교과서에 뭔가가 빠졌거나 아니면 우리가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처음 요르단(그리고 요르단에 있는 열방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부터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도 성경 이야기의 무대 배경의 일부인 요르단에 대해 그동안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겨우 그때부터 요르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고,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 경험하게 되는 바깥세상이 누구에게나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요르단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우리들에게는 미지의 세계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만큼은 적어도 요르단은 달라야 했던게 아닐까? 바로 우리가 날마다 읽는 성경의 실제 이야기가 펼쳐졌던 무대, 요르단이 바로 그 무대였기 때문이다.

성경 이야기로 보는 요르단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곳이다. 길르앗 산지, 우리아 장군이 전사한 랍바 암몬, 예수님이 세례 받으셨던 베다니, 엘리야가 승천했던 요단 근처, 엘리야의 고향 디셉과 엘리사의 고향 아벨므홀라, 모세가 마지막으로 설교했던 모압 평지와 그가 죽었다고 알려진 느보산, 모압 족속의 땅, 암몬 족속의 땅, 에돔 족속의 땅,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했던 얍복강, 예수님이 다니셨던 데가볼리 지역,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 등. . . 요르단은 구약과 신약의 많은 이야기와 사건들이 펼쳐졌던 무대였다.

날마다 성경을 펼쳐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정작 우리는 요르단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 성경의 땅(즉 성지)인 요르단에 대해 우리는 왜 이렇게 몰랐던 것일까? 요르단이 성경의 땅(성지)이라는 것에 대해 의식조차 못하고 지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도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현대 요르단은 성경보다는 먼저 이슬람과 연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요르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보다는 부정적인 인식에 기여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슬람이라는 부정적인 편견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요르단은 관심을 둘 만한 곳이 못되었다.

반면 이스라엘은 확실히 성경의 땅(성지)이라는 입지를 굳힌 지 오래다. 성지순례라 하면 이스라엘을 떠올릴 뿐 요르단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성경에서 요단 동편이라고 말하는 곳이 분명 이곳 요르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에게는 그저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어떤 곳이 되어 버린 듯하다.

요르단에 관해 전해 듣고 난 이후에 생각해보니 적어도 내게는 그랬던 것 같다. 요르단=성경의 땅보다는 요르단=이슬람의 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이 생긴 것이다.

요르단이 이슬람의 땅이라는 것, 요르단인들의 절대 다수(약 95-98%)가 무슬림이라는 것은 틀임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성경의 땅이요 기독교의 땅이기도 하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2-5%(자료마다 통계가 조금씩 다르다) 정도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 기독교인들 대다수는 정교회이거나 카톨릭이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개신교인들은 소수(보통 8천명~1만 명으로 보지만 최근 한 개신교의 교단장에 따르면 2천명 안팎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한다)에 불과하다. 요르단에서 개신교회의 활동은 1821년 오스만 통치기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개신교회로만 놓고 보자면 요르단에서의 역사는 불과 200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교회는 어떤가?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비잔틴 제국 시절부터 이곳은 그야말로 교회 천지였다(기독교 공인 이전부터 요르단 아카바에는 이미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주요 유적지는 절터가 대부분이지만 이곳의 주요 유적지는 교회터가 대부분이다. 주요 유적지마다 교회터를 볼 수 있다. 그 교회들 대부분은 바닥에 모자이크가 있는 비잔틴 시대의 교회들이다. 비잔틴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 요르단 땅에는 교회가 있었다. 아랍 시대와 오스만 제국 시대를 거쳐 현대 요르단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이 땅에서 사라졌던 적은 없었다(교회 역사 자료를 찾지 못하는 시기가 있기는 하다).

과하게 표현해보자면 이 땅의 교회들은 예수님 시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왔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소수자로 살아왔지만 그들은 이슬람 아래에서 조차 기독교인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필자가 이 땅에 와서 놀랐던 것은 지금은 비록 적을지라도 바로 그러한 교회들이 현재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암만 시내의 한 시리아(아람)정교회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언어인 아람어로 지금도 예배드린다. 이슬람 아래의 교회로서의 그들의 생존력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살피심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다. 교회,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2000년 역사 동안 기독교회는 이곳에서 그렇게 늘 한결 같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자리를 지켜왔다(카톨릭교회가 이 땅에 처음 세워졌던 것은 십자군 전쟁 때였다).

요르단 한인열방교회

요르단한인열방교회(2004년 12월 3일 창립)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그러한 교회 중에 하나가 되기를 소망한다. 비록 이곳에서는 외국인이지만 우리는 이 곳의 교회와 하나이기를, 완전히 다른 하나의 교회이기보다 하나님의 하나이고 보편적이고 거룩하고 사도적인 교회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다. 비록 종파와 교파는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것이다.

성경의 땅이며 기독교의 땅인 이곳 요르단은 또한 난민의 땅이기도 하다. 중동 전쟁 때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유입되었고(그들 중 상당수는 현재 요르단 국적을 취득하였다) 지금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들이 유입되었다(대략 130만-150만으로 추정). 시리아 뿐 아니라 이라크에서도 난민들이 들어와 있다. 이라크 난민들은 단순히 전쟁 때문이 아니라 신앙적인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다.

IS가 이라크의 북부 도시 모술을 점령하자 그곳에 살던 기독교인들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룻밤에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의 위협을 피해 요르단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모술(구약 성경의 니느웨가 위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은 전통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었다. 비록 종파는 다르지만(정교회이거나 카톨릭)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 아래 우리와 한 형제자매다. IS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지금도 그들은 그때의 악몽 때문에 이라크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유엔에서는 그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고 있고 이들 중 일부가 호주, 캐나다 등지로 이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라크 난민돕기 바자회가 열방교회에서 열리고 있다
난민돕기 열방교회 바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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