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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6/06/18
북한 억류서 풀려난 김학송 목사
“이제 우리민족 복음통일 위해 죽을 준비하며 살아 갈 것”
김학송 목사

지난달 북한을 방문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함께 북한에 억류 중이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이 극적으로 풀려나 미국에 도착했다.

이날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미국에 도착한 이들 3명을 직접 비행장에 나가 영접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들은 영웅이다. 힘든 것을 잘 참았다. 웰컴 홈”이라고 말하며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그들의 무사귀환을 환영했다.

그 세 명의 억류자가운데 한명이었던 김학송 목사. 그는 연변에서 태어나 연변농대를 졸업한 뒤 도문 시에서 농업 공무원으로 일했다. 1995년 미국으로 들어와 건축현장에서 혹은 식당 웨이터 등으로 일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목사로 부름받기 까지는 같은 연변 출신으로 본지 편집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최 민 목사의 끈질긴 전도 덕분이었다. 아쉽게도 그 최 민 목사는 이미 수년전 세상을 떠났다.

월드미션대학교의 특대생으로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5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2008년엔 미국 시민권도 받았다. 중국 선교에 큰 꿈을 갖고 계시던 고 임동선 총장의 배려덕분이었다.

2004년 세계기독복음선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동양선교교회의 파송을 받아 2005년부터 는 북경에 파송되어 대학생 선교에 힘썼다. 2012년까지 북경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벌이던 김 목사는 2014년 평양과기대 실험농장 관리부장으로 평양에 갔다. 평양과기대에 농장을 관리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그런 그가 지난해 5월 평양역전에서 전격적으로 체포되었다. 혐의는 반공화국 적대행위. 그렇게 억류되었던 김 목사는 비핵화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이 물밑 작업이 계속되던 5월 9일 북한의 유화책의 일환으로 억류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그 김학송 목사를 로스펠리즈 연합감리교회 신병옥 목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 목사의 가족들은 김 목사의 억류기간 동안 이 교회에 출석하며 모든 성도들과 함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해 왔다.                                                                                                                                          [조명환 기자]

 언제 체포되었는가?

 -작년 5월 6날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도문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서 나오는 도중에 체포됐다. 체포될 때만 해도 왜 체포되었는지 몰랐다. 당시에는 그곳이 어딘지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보안서 구치소였다. 가자마자 나를 책상 앞에 앉혀놓고 큰 선생이라고 불리는 보안서의 높은 간부가 “김학송, 너를 반공화국 범죄 행위로 체포한다”고 했다.

이튿날부터 조사가 들어왔다. 이튿날부터 조사를 시작해서 70일 동안 조사를 하는데,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다 아는 것을 진솔하게 고백하지 않으면 엄중하게 처벌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면 관대하게 처벌한다”고 했다. 70일간의 조사를 받으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 하였던가(욥 3:11)”라고 말했던 욥의 기도가 나의 기도였다.

그 기간 동안 계속 해서 진술서를 썼는데 A4 용지로 약 200페이지 정도를 쓴 것 같다. 죄를 고백하라고 하는데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였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네들이 증거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증거가 뭐냐 하면 10년 전에 미국에 있을 때 조선족 교회에서 활동했을 때의 사진들, 10년 전에 관계하고 있는 몇몇 목사님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북한의 굶주리는 동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아직도 힘들고 어두운 그 땅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라고 쓴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이게 누가 쓴 거냐고 다그쳤다. 그래서 그거는 내가 쓴 게 맞다고 했더니 이는 첫째, 최고의 존엄을 모독한 것이고, 둘째, 북한의 제도를 비난한 것이고, 셋째는 해외에서 반 공화국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억류 중에 어떤 생활을 했는가?

-체포된 지 70일이 되었을 때 조그만 방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손을 높이 들고 한 번에 1천보씩 하루에 만 보씩 걸으면서 시편 126편과 욥기의 말씀과 누가복음 18장의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 7-8)”를 외우면서 기도했다. 기도하면 신심이 생기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낙심도 되고 했다.

 

또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구나’ 라고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감사기도가 나왔다. 북경에서 10년 목회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사역에 중점을 두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어야 하는데, 그보다는 사역이 우선이었다. 그것을 보여주셨다. 선교의 열매를 맺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내 마음이 보였다. 그래서 회개했다. ‘하나님의 관계보다는 사역 중심, 남들에게 보이려는 것, 하나님이 나를 치신 것은 이 죄 때문임’을 고백했다.

 

억류에서 풀려 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가?

 

- 억류 39일째(달력도 시계도 없어서 노트에 하루하루 날짜를 기록해두었다) 되는 6월 12일에 조셉 윤이라는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웜비어를 데리러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그때 나도 조셉 윤을 만났다. 그래서 나는 그 때 미국 정부에서 우리를 바로 구출할 줄 알았다.

조셉 윤을 만나고 나서 그날 밤에 꿈을 꿨는데 내가 트럼프 미 대통령의 차에 앉아서 국회로 가는 거였다. 꿈속에서도 ‘영어를 못해서 어떡하지……’ 하면서 걱정하다가 꿈에서 깼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미국 정부에서 나를 구출하려고 뭔가를 할 거라는 것을 그때 믿기 시작했다.

 

 

풀려나기 직전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

 

-지난 5월 9일이 되자, 북한 관계자들이 나갈 준비하라고 했다. 아침에 그런 지시가 내려와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녁이 될 때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원래는 4월 1일에 나갈 준비하라고 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4월 1일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날도 준비하라고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저녁 7시가 되자 어딘가로 데려갔다. 담당 선생이, “오늘 제일 높으신 분을 만나는데 오늘 네가 너의 죄를 잘 뉘우치면 좋은 데로 가고 잘 못하면 재판을 한다. 오늘이 관건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인민공화국 몇 조항에 의해서 김학송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는데 미국의 강경한 요구에 의해서 추방한다”고 선언했다. 그때가 저녁 7시 반이었다.

 

밤이라 자동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으니 그곳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내다가 내보내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호텔을 나와서 차에 앉아 있다가 보니까 밴 하나가 다가왔다. 밴을 탔더니 나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다. 그때 처음 김동철 목사님과 김상덕 교수님을 만났다. 그분들도 내가 잡혀 있던 곳 복도 맞은편에 있었는데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보안서 구치소에 있을 때 조그만 창문으로 내다보니까 머리 깎은 분이 산보하는 것이 보였는데, 나는 ‘저런 분도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밴을 타고 보니 그분이 바로 김동철 목사님이셨다.

 

차를 타고 가는데 어느 호텔로 가는 줄 알았는데 평양순안공항으로 가는 거였다. 밴 차가 직접 비행기 트랩 바로 밑까지 데려갔다. 가서 보니까, 나중에 알게 됐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트랩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니까 장관이 “당신들은 우리의 영웅”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비행기에 오르니까 한 사람 당 두 사람의 의사(일반닥터, 심리학자)가 배당되고, 신체검사를 하고, 혈압 재고, 불편한 데는 없는지를 물어보고, 너의 가족은 잘 있다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시켜주었다. 미국 정부에서는 우리를 위해서 팬티부터 양말까지, 세면도구까지 다 준비를 해서 나눠주었다. 그리고 나서는 비행기가 일본 공군 기지에 내렸다가 알라스카 들렀다가 미국으로 간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속에서의 감정이 어땠는가?

 

-알라스카에서 떠날 때 비로소 새벽 2~3시에 트럼프 미 대통령 부부가 우리를 마중을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꿈 생각이 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에 앉아서 국회로 가던 꿈! ‘야,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하면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뭔데, 나 같은 사람이 아무 공로도 없는데, 능력이 없는 내가 뭔데 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환대를 받게 하시나……’ 하면서 감사기도를 드리는 데, “너는 내 아들이라”는 감동이 왔다. 내가 트럼프 대통령의 차를 타고 국회로 가는 꿈을 꾼 것이 나 혼자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꿈을 우리 장모님도 꾸셨고, 제가 또 존경하는 목사님과 또 다른 분도 내가 석방하는 꿈을 꾸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 꿈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였구나 하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면서 미국 시민권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가?

 

-억류 중에도 그렇게 기도했다. “하남님, 조국의 통일을 위해 죽게 하소서!” 나 같은 사람을 살려주신 하나님 은혜에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우리 민족의 복음통일의 날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할 예정이다. 그동안 나는 죽을 준비를 못하고 살았다. 살 준비만 하고 살아왔다. 이제는 복음통일을 위해 죽을 준비를 하면서 살고 싶다. 

신병옥 목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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