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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8/16/17
아내의 3주기를 맞이하며 고마운 분들에게
아내가 소천하기 1년 전, 그리고 필자의 생일을 축하하며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큰딸 하늘, 막내 조아 그리고 필자부부, 둘째 나라, 세째 보라

한진호(은혜연합감리교회 목사)


벌써 아내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 날이 3년이나 되었습니다. 양가의 반대로 그 어려웠던 시기를 잘 극복하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양가의 어른들의 반대는 분명했습니다. 저의 집안에서는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사모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아내의 집안에서는 좋은 자리 다 거절하고 혼자 살거라고 고집 쓸 때는 언제고, 결국 가난한 신학생과 결혼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결혼생활 내내 강인한 정신력으로 사모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난한 신학생이며 돈과 상관없는 목사이기에 아내를 최대한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었습니다. 몸이 불편했던 아내는 반대로 강인한 정신력과 저와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면서 신앙심까지 돈독해져갔습니다. 목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깊은 실망감과 낙심가운데 있을 때에도 상냥한 미소와 여유로움을 잃지 않고 저를 위로해주고 감싸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편견은 교회 안에서도 존재했습니다.

‘다리 저는 사모’ 그래서 ‘목사의 목회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짐만 되는 존재’ ‘저런 사모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는 말도 서슴없이 교회안에서 믿음이 있는 분들을 통해서 들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아내의 가슴에 멍이 되고 아픔이 되었는지 그 가슴에 암이 자라나고 커져갔습니다.

마지막 그녀의 일기 속에서 “하나님, 그곳에서는 하이힐도 신어보고 수영복도 입을 수 있겠죠? 그곳에서는 이렇게 아프지 않겠죠?” 그렇게 이 땅에서 해 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 들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지 말아야 할 아픔을 그곳에서는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곳 미국에서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제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앞으로 진통이 오면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시는 일 밖에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없습니다.” 최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서울에까지 가서, 치료를 받고,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하는 그녀의 결심에는 두가지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한 가지는 한 사랑교회의 성도님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있었던 교회에서는 암에 걸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부엌일, 교회 허드렛일들을 모두 아내가 도맡아서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랑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님들께서 암에 걸려 있는 사모를 따뜻하게 감싸주셨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기 때문에 그 분들과 조금 만 더 신앙생활을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막내 조아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 까지만 보는 것이 소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그녀의 소원을 뒤로 한 채 그렇게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꼭 3년이 지나서 이제 막내 조아가 스스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또 홀아비 목사를 받아주셔서 함께 신앙생활을 마다 하지 않는 은혜교회 성도님들로 인해서 아내의 그 마지막 두 가지 소원을 다 이룬 듯 합니다. 오늘 이렇게 저와 딸들이 지나온 3년 동안 힘들었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의 관심과 기도, 그리고 따뜻한 사랑 때문이었음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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