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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8/08/18
건강상 이유로 휴직했다 다시 목회에 복귀한 신영각 목사
“하나님이 날 부르시고 은사 주셨다면 필요할 때 다시 부르실 것이라 믿어”
신영각 목사와 신영기 사모

윌셔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로 지난 7월부터 파송을 받아 부임한 신영각 목사에게 윌셔연합감리교회는 아주 특별한 교회다. 갑자기 찾아온 췌장 질환 때문에 열정적으로 섬기던 샌디에고연합감리교회를 사임하고 3년 5개월 만에 다시 목회에 복귀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정말 아끼고 사랑했던 샌디에고 연합감리교회를 몸이 아파 그만둘 때의 절망감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아픔이었습니다. 1천만 달러를 들여 새 예배당을 건축하고 2세를 포함해 1천여 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병 때문에 내려 놔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엄청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병 때문에 교회에 짐이 되지 말자”라고 다짐했다가도 이튿날 아침이 되면 “아파도 다시 한번 해보자”고 다짐하는 등 하루에도 100번은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그때 신 목사는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 교회가 네 것이냐? 그 질문 앞에 내 마음에 찾아오는 대답은 그것이었습니다. 아닙니다. 내 교회가 아닙니다. 그럼 내가 내려놓겠습니다.”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면서 목회자의 소유욕, 욕심에 관해 깊게 성찰하는 계기를 얻었다고 말하는 그는 육신의 연약함은 의지의 연약함을 불러 오고 의지의 연약함은 곧 영적인 연약함을 불러오더라고 고백했다.

이 영적인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신 목사는 세 딸들이 살고 있는 산타모니카 지역으로 주거지를 옮긴 후에 치료에 열중하면서 책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평소 읽고 싶었지만 바쁜 목회일정 때문에 밀려나 있던 기독교 고전들을 파고들었다. 초대 교회 교부들의 저서들은 물론 1세기부터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는 위대한 교회사 인물들에 관한 서적들이었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기독교 고전에 빠져들면서 나 자신을 성찰하는 아주 소중한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독서에 열중하고 치료에 열중하면서 나는 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은사를 주셨다면 그 분이 필요하실 때 다시 나를 부를 실 것이다. 나는 늘 그 생각을 가지고 이었습니다.”

이때 매일 저녁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도서관에 나가 리서치를 계속하다가 결국 “1세기 교회, 21세기 교회”란 사도행전 강해 설교 집을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신 목사의 첫 번째 저서였다. MTBC에서 출간한 이 책은 한국어와 몽골어 2중언어로 출간되었는데 몽골에는 이미 1천 여권 이상이 보급된 상태다.

“몽골 선교 10여년을 해 왔습니다. 병과 씨름하면서 선교지를 위해 헌신하며 병을 이기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몽골사람들은 신앙심은 있는데 신앙관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강해설교와 성경주해 형식으로 넉달 동안 집필하여 책을 낸 거지요. 정말 몽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없이 진통제를 먹으며 쓴 책입니다.”

건강이 회복되어 파송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교단에 알렸을 때 딸들은 “아빠, 지금까지 하신 것으로 충분해요(You did enough)"라고 말하면서 다시 목회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더욱 부인 신영기 사모도 14년전 위암을 얻어 4년 동안 고생하다 회복된 것을 옆에서 목격한 자녀들이 아버지를 걱정해서 하는 부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30여명 쯤 모이는 개척교회로 파송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형교회 사이즈인 윌셔교회로 파송된 것은 조금 예상외였다고 말하는 신 목사는 “저는 150명 교회, 400여명 교회, 1000여명 교회를 다 목회 해 봤습니다. 내가 목회를 얼마나 잘하는지 뭘 보여주겠다는 식의 인간적인 욕심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어찌보면 유치한 발상이죠. 하나님이 다시 불러 주신 목회현장에서 겸손하게 그 분의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교회성장론자들이 말해 온 교회성장의 첫째도 로케이션, 둘째도 로케이션, 셋째도 로케이션이라는 시대는 지나 갔다고 진단하는 신 목사는 지금 SNS시대에는 위치가 아니라 바로 공동체 정신이라고 말했다.

“윌셔교회가 로케이션이 아주 좋다고 말합니다. 그것만이 성장의 요인이 될 수는 없지요. 윌셔가 지향하는 공동체 정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지역사회에 선포하기 위해 실력있는 믿음의 소양을 갖추는 일입니다. 앞으로 3년 단위로 미래위원회를 조직하여 윌셔교회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지도자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찾아내고 그걸 세워나가는 일에 노력할 예정입니다.”

자신은 제목 설교보다는 강해설교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신 목사는 설교가 끝나면 윌셔 성도들의 마음속에 성경의 본문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전통적인 예전적 예배를 회복하는데 노력할 것이라며 “오늘날의 교회들이 예전의 전통을 너무 쉽게 버린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교회에 부임해 보니 어른 400여명 교인에 어린이가 40여명에 불과한 것에 놀랐다며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들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하고 곧 교회에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이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설교언어를 바꿔 젊은이들에게 맞추고 30-40대의 고민을 다뤄줄 뿐 아니라 교회영접도 젊은이들로 바꾸고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그들의 취향에 맞게 깨끗, 상큼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어른들은 교회 음식하면 무국이면 최고지요. 얼마나 좋아요. 나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교회점심하면 무국. . 아주 질려버립니다. 그들 취향에 따라 카레라이스로 바꿔보던가 영아들의 귀저기를 바꿔주는 화장실로 개조해 보면 아마 젊은이들의 반응을 금방 달라질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 없다고 시대를 탓하지 말고 교회에서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나서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목사는 신영기 사모와의 사이에 글로리아, 에밀리, 폴라 세 딸을 두고 있다.

신영각 목사는 16세 때인 1972년 가족이 하와이로 이민 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군에 입대, 3년 동안 독일로 배치, 그곳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의사가 되기 위해 동부 매릴랜드 주립대학에 진학하여 생화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대학생활 중에 ‘왜 사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의사라는 인생목표에서 목회자로 방향을 전환, 서부로 와서 82년 클레어몬트신학대학에 입학, 87년 미 연합감리교단(UMC)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첫 부임지는 ‘와싱턴 한인교회’ 2세 목회, 그 후 델라웨어 한인교회 1세 목회 후 99년 로렌하이츠에 있는 남가주주님의교회, 샌디에고 한인연합감리교회 담임 목회후 지난 7월 윌셔연합감리교회로 부임했다.

 

 

신영각 목사가 투병 중에 쓴 첫 번째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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