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Logout
213.383.2345
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7/11/18
사계의 영성
신영각(윌셔연합감리교회 목사)

우리는 사계를 말할 때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사계의 새로운 질서를 주장하고 싶다. 즉 겨울, 봄, 여름, 가을의 새로운 질서이다. 생명은 겨울의 뿌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봄에 싹과 잎을 내고,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에 열매 맺는다. 겨울에 시작된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움직임이 봄, 여름을 통해 가을에 열매 맺는 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겨울 땅에 뿌려진 씨앗도, 겨울나무의 뿌리도 보이지 않지만, 겨울나무의 뿌리는 엄연히 생명체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겨울이라고 하면 마지막, 죽음, 고독, 버려짐등을 생각하게 된다. 어둡고 힘든 계절이라고 느낀다. 견디어 내야할 시기, 그래서 봄을 기다리는 시기로 간주한다. 그래서 겨울을 가까이 느끼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영성의 안목으로 볼 때에 겨울은 중요한 계절이다. 겨울은 나를 세워주는 나의 뿌리를 소중히 돌아보게 한다. 나는 무엇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느 곳에 서 있는가를 물어보게 한다. 나의 근원을 생각하게 한다. 나의 삶의 자리를 향해 나의 기도와 묵상을 움직여 나가게 된다. 그러한 움직임가운데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다.

야곱의 얍복강은 겨울의 실존이다. 바벨론 포로시절도 이스라엘의 겨울이었다. 이사야의 표현을 빌리면 그루터기가 된 시절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겨울이었다. 낮아지고, 버려진 겨울이었다.

그러나 압복강의 씨름 없는 야곱은 야곱이 아니다. 바벨론 포로시절이라는 이스라엘의 겨울에 그들은 성전을 잃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경전을 찾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겨울을 통해 부활의 봄을 선포하셨다.

겨울의 실존은 고독하다. 그러나 외로운 것은 아니다. 외로운 것은 존재의 불안을 뜻한다. 그러나 고독은 홀로 설 수 있는 존재의 용기를 뜻한다. 외로움은 연합의 반대말이지만, 고독은 나와의 연합이다. 고독은 근원적인 연합이다. 고독의 존재로부터 진정한 기도가 흘러 나온다. 4세기 성자인 에바구리우스는 “수도사란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고 모든 것과 연합한 사람입니다”라고 필로칼리아에서 말한다.

겨울나무에게는 봄 나무의 화사함도 없고, 여름나무의 생동감도 없다. 더우기 가을 나무의 풍요한 열매도 없다. 겨울나무는 볼품이 없어 보인다. 겨울나무는 가난해 보인다. 그러나 겨울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묵묵히 뿌리를 내린다. 생명의 근원을 깊게, 깊게 연결해 들어간다. 삼계(봄,여름,가을)를 이루기 위해 겨울을 견디어 낸다. 봄의 화사함을 시샘하지 않고, 여름의 화창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가을의 열매를 탐내지 않는다. 겨울나무는 겨울의 때를 알고 겨울의 사명을 알기 때문이다.

List   

The Christian Weekly
3700 WILSHIRE BLVD. #755
LOS ANGELES, CA 90010
TEL. 714.383.2345
Email. cweeklyusa@gmail.com
COPYRIGHT © 2015 THE CHRISTIAN WEEK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