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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6/28/17
우리의 ‘독립기념일’은?
김해종(목사, 전 연합감리교회 감독)

독립기념일은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금년 독립 기념일을 또 맞이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왜 우리나라는 독립 기념일이 없는가? 우리나라는 통일이 되지 않아서인가? 우리나라는 ‘독립국’이 아닌가?

사실 우리민족처럼 독립심이 강하고 독립을 염원 했던 나라가 또 있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

은 독립운동가와 독립지사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그들의 생을 바쳤는가? 그리고 1945년에 그처럼 염원하던 날이 다가 와 일제로 부터 해방 되었는데 ‘독립’은 하지 않은 것인가? 왜 우리에게는 해방기념일은 있으나 독립 기념일은 없는가?

미국의 독립 기념일을 보자. 1776년 7월 4일 영국의 통치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하는 13개 지역의 대표들이 모여 이제는 ‘식민지’ 아닌 당당한 나라(State)임을 선언하고 13개의 주가 연합국(United States)이 되어 필라델피아에서 ‘대륙 국회/대회(Continental Congress)’의 이름 으로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56명의 대표들이 서명하여 공표하면서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후일에 이날을 독립기념일로 제정하였다.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그 당시 미국은 완전히 독립한 상태가 아니었고 영국과 독립전쟁을 시작한지 일 년 되던 해였다. 2만 5천명이나 되는 독립군의 생명을 앗아간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은 7년을 더 계속하여 8년 만에야 승리하여 완전 독립이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는 1895년에 이미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외쳤다. 그는1885년 갑신개혁에 실패하여 미국으로 망명한지 10년 만에 귀국하였다. 그는 그 후 2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눈부시게 독립정신 교육과 운동을 펼쳤다. 그것은 그가 미국에서 배우고 체험한 자유 민주주의의 사상과 정신을 조국에 심기 위하여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한글로 발간했고 서울 서대문에는 독립문을 세웠다.

그것은 당시 청국과 일본의 외세에 의하여 압박받고 언제 주권을 잃을지 모르는 풍전등화 같은 조국의 미래를 본 그의 절규요 피눈물 나는 부르짖음이었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 가는 그를 나라와 백성은 받아드리지 못했으니 그는 ‘독립’이라는 두 글자를 조국의 가슴에 새겨 놓은 채 눈물을 머금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남겨 놓은 독립정신은 1919년에 기미년 3.1 만세 운동으로 다시 꽃을 피웠고 부활하였으니 33인의 우국지사들은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우리나라는 독립국임을 선언했다.

이 소식이 미국에 전해지자 서재필 박사는 같은 해 4월 14일 미국 독립을 선언한 성지인 필라델피아에서 당시 미국에 사는 한국인 약 150명을 모아 ‘한인대회/국회(Korean Congress)’ 를 소집했다.

이승만 박사, 안창호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도 참석했던 그 대회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기념관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했다. 그것은 미주에 살던 한 민족의 엄숙한 독립선언이었다. 그가 이 모임을 1776년에 미국독립을 선언한 대회의 이름을 따 영문으로는 같은 단어(congress)를 썼다는데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본다.

우리 기미년 독립선언문은 미국의 독립 선언문 못지않은 위대한 문서요 선언문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묻고 싶다. 미국의 독립 기념일이 독립선언문을 싸인한 날이라면 우리나라도 ‘독립선언문’을 공포한 그날 곧 3월 1일이 우리나라의 독립 기념일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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