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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6/07/17
“머리에서 가슴으로” (누가복음 24장 28-32절)
안명훈(뉴저지 아콜라연합감리교회 목사)

지난 목요일 5월 24일은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의 회심일입니다. 이날 웨슬리는 귀한 영적 체험을 합니다. 그는 그날 체험한 것을 자기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9시 15분전쯤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하사 일으키시는 변화를 말할 때에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1)나는 그리스도를 의지하였다. (2)구원에 있어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였다. 그리하여 (3)그리스도께서는 나 같은 죄인의 죄까지도 없이 하시고 사망과 죄의 율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4)그 후에 나는 나를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를 위하여 정성껏 기도하였다. (5)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경험을 증거 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체험을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5월 24일 전(前)주일을 “웨슬리 회심주일”이라고 부르면서 그날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저는 웨슬리의 이러한 체험을 “회심”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회심”은 주로 구원의 사건을 동반하는데 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e) 이 변화를 받아 세례 받고 구원받게 된 그의 경험을 우리는“회심”이라고 부릅니다. 어거스틴은 밀라노의 한 정원을 산책하다가 어린아이들이 조잘대는 소리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를 듣고서 서재로 가서 성경을 펴서 읽습니다. 그때 그가 읽은 것이 바로 로마서13장 13-14절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어거스틴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회심 사건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즉 회심은 이렇게 구원 사건이 동반될 때 주로 사용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리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그는 성공회 목사였습니다. 얼마 전 미국 죠지아에 가서 2년간 선교사역을 하고 돌아온 선교사였습니다. 물론 웨슬리의 일기에서 볼 수 있듯이, Aldersgate에서의 그 경험이 구원과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그 경험을 통하여 새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 같은 죄인의 죄까지도 없이 하시고 사망과 죄의 율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경험은 “회심”이 아니라,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Heart Warming Experience)이었습니다.

 

9시 15분전쯤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하사 일으키시는 변화를 말할 때에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경험 이후에 그에게 일어난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머리로만 이해하였던 신앙이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ldersgate에서 이러한 체험을 한 뒤에 그가 하였던 첫 번째 설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그의 설교 중에 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믿음이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차디찬 동의이거나 어떤 이론과 같은 사변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고,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뢰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셨고,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우리의 구속이 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분으로 알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는 1738년 5월28일에 웨슬리가 경험하였던 사건을 “회심”으로 부르는 것보다, “웨슬리의 마음이 뜨거워진 체험”(Wesley’s Heart Warming Experience) 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체험을 “성령체험”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UMC 교회 달력에도 5월 28일을 “Wesley’s Conversion”이라고 하지 않고, 그저 “Aldersgate Day”로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웨슬리의Aldersgate 체험이 일반 교회력의 “오순절 성령강림 주일”과 그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한 섭리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웨슬리의 마음이 뜨거워진 체험”(Wesley’s Heart Warming Experience)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졌던 그 체험이 우리 모든 성도들도 꼭 가져야 하는 귀한 신앙적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의 본문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두 가지 귀한 경험을 하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Heart Warming Experience)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영의 눈이 열리는 경험”(Eye Opening Experience)이었습니다. 본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사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던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Heart Warming Experience)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꼭 경험하기를 원하셨던 두 가지 중에 하나였고, 웨슬리도 경험했던 것이었고, 또한 우리들도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경험입니다.

 

신앙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늘 말씀드렸습니다.

 

(1) 첫 번째는 “머리의 차원”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지적 차원입니다.

(2) 두 번째는 “가슴의 차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말씀이 내용입니다.

(3) 세 번째는 “손과 발의 차원”입니다.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뜨겁게 느낀 것을 우리들의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야 참 신앙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믿음에 있어서 이 세 가지 차원은 모두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에게 있어서 “머리의 차원”은 비교적 강합니다. 성경에 대하여 많이 압니다. 그런데 약한 것이 바로 “가슴의 차원”과 “손과 발의 차원”입니다.[1] 오늘 요한 웨슬리가 가졌던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기억하며 우리들도 그러한 체험을 갖기 소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아직도 지식의 잣대로 성경의 모든 가르침들을 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신앙의 확신에 거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절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성으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이해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말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롬 1:17)

 

성경의 진리들은 알기 때문에 믿는 진리가 아니라, “믿기 때문에 알아지는 진리”인 것입니다. 순서가 절대로 뒤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한 후에 그가 그동안 머리로만 이해했던 것들이 가슴으로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동안 머리로만 동의하며 말했던 “아멘”이 가슴을 치며 “손과 발이 움직이는 아멘”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웨슬리처럼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체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로 주시는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엠마오 두 제자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셨고, 웨슬리도 자기가 한 그 경험이 자기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험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9시 15분전쯤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하사 일으키시는 변화를 말할 때에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그렇다고 이러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한 귀한 경험들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일어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이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영적 고민”입니다. 웨슬리는 Aldersgate에서 그 귀한 경험을 하기 까지 참 많은 영적 고민을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죠지아에 선교사로 갔다고 실패하고 돌아 온 후에 그는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인디언들을 구원시키려고 미국에 갔었다. 그러나 누가 나를 이 불신앙의 죄악에서 건져 줄 것인가? 나는 외관상으로는 아주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설교도 훌륭하게 잘 할 수 있다. 나의 믿음은 마치 화창한 여름날의 날씨와 같다. 나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을 때에는 말도 잘하고 신앙도 좋다. 그러나 죽음이 내게 엄습할 때에는 두려워 벌벌 떤다. 사도 바울처럼 ‘죽는 것도 내게 유익하다’라는 고백을 담담히 할 수 없지 않는가? 오! 누가 나를 이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해 줄 것인가?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영적 근심의 유익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영적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

 

“어떻게 하면 좀 더 신앙생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영적고민을 늘 해야 합니다.

좀 더 크고, 강하고, 성숙한 신앙을 갖기 위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늘 똑같은 죄를 반복하여 짓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영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고민해야 합니다.

열심을 내지 못하는 자신의 신앙을 보면서 고민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이 습관적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자신의 신앙에 활력이 없다고 생각되십니까? 자꾸 신앙에 대한 의심이 생기십니까?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빨리 고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안타깝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의 신앙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나에게 뜨거운 마음을 주옵소서. 머리로만 이해했던 신앙을 가슴으로 뜨겁게 느끼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요한 웨슬리의 고민이었고,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고, 하나님은 성령으로 그의 가슴을 뜨겁게 해 주셨습니다. 그에게 구원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성령을 우리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시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구하여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되어 가지고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9-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교회를 사랑하며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그러한 체험이 있으신 분들을 그 체험을 귀하게 기억하시고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아직까지 그러한 체험이 없으신 분들은 그러한 체험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항상 마음을 열어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의 두 제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셨듯이, 또한 요한 웨슬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셨듯이 우리들의 마음도 뜨겁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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