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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5/03/17
그 날이 오면, 그 분이 오시면(사 11: 1-10)
임찬순(성누가 한인연합감리교회 목사)

신앙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애타게 사모하고 기다리는 어떤 것입니다. 어느 날 사모하고 애타는 하나님이란 세 글자 가운데 <나>가 들어 있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전체가 “나” 즉 자기에 대한 예언의 기록이란 것을 깨우쳤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정하신 뜻을 온 몸으로 살아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나, 즉 자기 속에 와서 사신다는 깨달음을 목숨 걸고 살아낸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는 새 날을 꿈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변화의 역사를 기다린 것입니다.

현대 신학자 몰트만은 종말론은 성서와 기독교 신앙의 토대라고 말합니다. 우리 한민족은 이런 종말론적인 삶을 살았던 민족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가난과 전쟁, 절망과 궁핍의 현실 속에서, 오직 하나님이 오시는 그 날, 평화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기에 이사야의 예언과 묵시는 한민족 속에 있는 그날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자극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사야의 말씀에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전체는 시이고, 그것은 고난의 자리, 망한 자리에서 퍼올린 생명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목회 현장에서 하나님이 오시는 그 날을 정말로 사모하고 기다립니까?

내가 정말 주님이 오시는 날을 온 몸으로 기다리는 것인지, 한 영혼을 품고 사랑하는 목회를 하는지, 하늘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지를 저 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1. 하나님은 변화의 영입니다(God is the Spirit of Change).

 

제 1이사야는 유다가 망해가는 위기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제 2이사야는 바빌론 시대를 삽니다. 화려했던 다윗과 솔로몬 왕조가 끝나고 분열과 혼란의 시기를 거쳐 나라가 망하는 치욕의 역사인 바빌론 포로시대는 가장 험난한 모퉁이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고난의 시기를 거치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 성전, 예배를 재정립하면서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메시야 대망은 민족을 넘어 세계를 품고, 전쟁과 싸움을 종식하고 평화의 시대를 갈망하는 그들의 눈물의 기도로 피워낸 꽃이었습니다.

망해가는 나라를 보면서, 포로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시는 그 날이 오기를,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 나기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시면, 나라가 망하는 전쟁과 싸움이 그치고, 약육강식으로 적자생존을 위해 먹고 먹혀야 하는 동물들이 서로 사이좋게 놀면서 살아가는 평화의 날을 그렸습니다. 그 꿈이 너무도 찬란하고 선명합니다.

저의 선생님 이정용은 하나님을 동양적 심성과 언어로 읽어낸 시인입니다. 민들레 홀씨 하나가 태평양 상공을 날라와 미국이란 땅 위에 떨어져 싹이 트고 움이 나서 자라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그가 자기 집 잔디 밭에서 뿌리까지 뽑아 버리려던 노란 민들레 꽃을 들고서 그 꽃 속에서 자신의 모습, 자화상을 봅니다. 노란 민들레의 상처와 비애는 낯선 미국 땅에서 고생하면서 새 날을 꿈꾸던 우리 선배들의 모습입니다.

 

이정용은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변화 자체와 변혁의 역사 속에서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근원이신 분입니다. 중심을 차지하고 권력을 잡고서 변화 즉 하나님의 역사를 막으려고 반역하는 자들을 향해 구석지로, 모퉁이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Marginality 즉 모퉁이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새일을 하십니다.

이정용은 신학을 가르치면서도 목회의 현장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중문화 가정에서 소외되고 한에 절어서 살던 한많은 여인들을 위해 매 주일 200마일이 넘는 길을 운전하고 가서 위로하고 힘과 용기를 주고, 교회를 사랑했던 목회자였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7년 전 2010년 섣달 그뭄 날 동부에서 텍사스의 성 누가로 파송받아 왔습니다. 나중에 보니, 이중문화 가정은 하나님이 변화를 일으키시는 모퉁이였습니다. 그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마진 margin 모퉁이에서 새생명을 새 역사를 창조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성 누가는 변화의 소용돌이였고 모퉁이였습니다(St. Luke is the place of marginality and change).

 

이중문화 가정 목회를 특수목회라고 부르는데, 처음에는 이 말이 이해가 안되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성 누가는 바닥까지 깨지고 무너지면서 변화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이들을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이 외딴 곳, 변방으로 주님이, 주님의 영이 성 누가를 찾아 오셨습니다.

인디언 집사님이 있습니다. 인디언 집사님은 미군과 결혼해서 이 땅에 왔지만, 남편과 시어머니와의 삶이 쉽지 않았습니다. 문화, 언어, 성격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버림을 받아 이혼을 당합니다. 그 충격은 자살을 시도하게 했고, 정신분열까지 겪습니다.

당시의 담임 목회자는 일 년여 이상 같이 살면서 그녀를 돌봅니다. 그녀는 한없이 까탈스럽고 싸우고 소리지르고 행패를 부리는 이였고, 성 누가에서는 트러블 메이커였습니다.

제가 오자마자, 인디언 집사님은 저를 붙잡고 성 누가의 역사부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며,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꿈과 역사, 현실과 해석을 뒤범벅하고 영적인 상상력을 보태서 대하드라마를 썼습니다.

때론 융적인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제가 보기엔 너무도 무궁무진한 목회와 신학적 상상력의 원자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는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녀에게 학을 떼고 미워했지만, 저는 감정이 이입되어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곤 했습니다. 제가 인디언 집사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자, 그녀의 이야기는 서서이 줄어들었고, 이제는 더 이상 저를 붙잡고 오래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정말로 변해갔습니다.

남을 날카롭게 째려보고 조건반사적으로 대응하던 태도가 누그러지면서 남을 이해하게 되었고, 싸우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너무도 아름답고 귀하게 삽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알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제가 성 누가에 온지 6년 만에 인디언 집사를 명예 권사님으로 추천했고, 압도적인 표로 권사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디언 집사님의 마음을 만지고 변화시켜서 정말로 주님의 귀한 딸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사람은 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변화 자체이십니다.

한 권사님은 영화에서 보던 대로 미국에 오면 삶이 확 핀다고 꿈에 부풀어 시집을 왔습니다. 텍사스 동쪽에 위치한 친정 집에 갔더니 육십년대 한국보다 더 가난한 흑인 마을이었습니다. 게다가 한동안 남편은 파병을 가서 홀 시어머니와 살았습니다. 말이 안 통하니, 시어머니도 무섭고 교회에도 가면 동물원 원숭이처럼 자신을 쳐다보며 수군대는 이들이 무서웠습니다. 미국에는 예수님도 계시다는데, 저에게 나타나달라고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이상한 구름이 떠 있는데 그 위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생생하게 예수님은 자기를 안아주셨습니다.

미국에는 예수님이 계시다고 하더니 정말 계시군요 하고 울면서 신앙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그 분을 뵙고 나니, 무서움이 사라지고 입에서 노래가 나왔습니다.

시어머니가 너는 영어도 못하면서 노래는 잘 한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니,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시어머니도 사랑스럽고 그 가난한 동네가 정겨워졌습니다. 그 분이 오시면, 새 날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간증해주실 김효중 권사님의 삶은 파란만장한 대하 드라마입니다. 약물에 취해 겁탈을 당해서 낳은 핏덩어리를 신혜, 믿을 신, 은혜혜 자로 이름 지었습니다. 그 아이를 기르기 위해 미장원에서 일해서 신혜를 돌볼 친할아버지/할머니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3년을 부양했습니다. 삼년을 몸부림치며 키웠으나, 권사님도 모르게 신혜 아빠가 딸을 해외로 입양해버렸습니다. 그 딸을 찾아 권사님은 한많은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기에 딸을 찾기 위해 흑인병사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습니다. 딸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 때문에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습니다. 십여년을 하루에 세번씩 제단을 쌓고, 한끼만 먹고 금식을 했습니다. 밤을 새워 기도하고 전도하며, 예수에 미쳐서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권사님의 어머님은 남편은 김일성대학 들어간다고 월북했고, 예수 신랑 모신다고 시집에서 쫒겨나 평생을 기도로 사신 분입니다. 딸을 찾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기도했을 때, 주님은 “너는 해가 진 뒤라도 이삭을 주워 단을 묶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 놀랍게도 걸프전쟁이 일어났고, 50센트, 75센트짜리 이삭처럼 군복을 수선하고 단추를 달고 견장을 다는 소잉 샵에서 밤낮으로 일해서 6개월 만에 5만불을 만들었습니다.

돈을 번후 신혜를 입양한 한국의 고아원을 찾아 갔으나, 유럽으로 입양되었다는 사실만을 알게 되었을 뿐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주님께 눈물로 기도에 매달렸을 때, “월드 차일스 케어”라는 단어를 하나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그것도 꼭 세번을 반복해서 말씀해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단서로 천신만고 끝에 네델란드에 있는 신혜를 찾습니다.

네 살에 헤어진 딸을 열 여덟살에 기도의 응답으로 찾은 것입니다. 친 아빠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어 자라다가 다시 양부모에게 버림받고, 풋사랑으로 딸을 낳고 살던 남자친구에게 또 버림을 받고,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까지 당했지만, 하나님은 신혜를 지켜 주셨습니다.

어미의 눈물과 기도는 지구를 넘어 우주바깥이라도 가서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신혜는 지금은 좋은 인격의 남편을 만나 전원을 가꾸며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도록, 하나님은 신혜에게 에덴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권사님은 고난의 여정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만들어 오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성 누가의 성도들이 가진 아픈 상처의 과거가 너무도

아름답고 눈이 시리도록 거룩한 이야기로 변화시키시는 것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이 분들을 위대한 모험가요, 숨겨진 영웅들(unsung heroes)로 빚어주신 것입니다. 저는 이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역사와 삶의 모퉁이, 성 누가에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실 때, 변화의 바람, 성령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상처와 아픔, 고통과 눈물을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귀중하고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3. 감리교회여, 한민족이여 일어나라(Arise Methodists and Koreans!)

 

하나님이 선교사들을 통해 가난과 전쟁의 땅, 변방의 나라 한반도를 찾아오셨습니다. 19세기 말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한민족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을 때, 한민족은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을 찾았던 한국개신교의 원년인 1885년 이후

사반세기 25년 만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깁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전과 역설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복음을 받고 육신의 나라 조선을 빼앗겼지만, 출애굽기와 계시록을 읽으면서 하늘나라를 찾겠다는 꿈을 갖습니다. 독립선언서의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라고 기록한 이 언어, 새 하늘과 새 땅은 한민족의 운명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스크랜턴과 전덕기가 세운 상동교회에서 “신민회” 새로운 백성을 지향하는 결사체를 만들었고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감리교회를 통해서 나왔고 그들을 통해 대한민국이 세워집니다. 해방후 북한에서 월남했던 감리교회 이윤영 목사가 대한민국건국일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 해는 1948년인데 이스라엘의 독립과 같은 해입니다. 이것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감리교인이었고 미국 대통령 감이라고 불렸던 아펜젤러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빛을 보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고, 조국을 되찾아야 했기에 미국 시민권을 얻지 않고 무국적자로 삽니다. 그는 성경을 매일 읽었고 기도하는 시간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대 한국기독교인 가운데 가장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한국 감리교회는 미국연합감리교회의 100년의 열매입니다. 1784년 크리스마스 연회를 통해서 미국감리교회가 탄생했고, 1884년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이 한국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파송되었고, 1885년 한국에 도착합니다. 한국감리교회는 미연감리교회 100년의 아들이고, 백년의 열매입니다.

이제 한국감리교회와 미국의 한인교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조국의 통일과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승만 박사는 1912년 12월 2일에 워싱턴 포스트에 보도된 연설에서 이런 예언을 합니다.

“유대인들이 서양 종교에서 이룬 것들을, 동양에서는 한국이이 이루어낼 것입니다. 앞으로 백 년 안에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What Judea has done in a religious way for the Occident will be done by Korea in the Orient, and this work, moreover, will be accomplished within the next one hundred years).

사막의 유랑민 유대민족이 서구 문명사에 끼친 절대적인 영향을, 한민족은 동양에 미칠 것이라는 예언과 비젼, 그것은 백 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초대 한국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세상을 복음으로 바꾸겠다는 열망을 품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 선배들에게 심어주었던 꿈이었습니다. 동양의 시대가 열릴 것이고 한국이 그 역사를 복음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비젼입니다.

아펜젤러의 순교의 피가 우리 한국 감리교인들 속에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바칠 천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것들을 모두 다 한국에 바치겠다”고 했던 텍사스 출신의 선교사 루비 켄디릭(Ruby Kendrick)의 피가 우리 속에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이 한민족의 후예인 우리들을 미국으로 불러서, 다시 새롭게 복음의 횃불을 들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들은 너무도 잘 살게 되어서 절망 속에서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야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나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규,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절박함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을 기다렸던 그 영혼의 기다림, 사모함과 기개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절절함이 묽어지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절실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저의 7년째 접어드는 성 누가의 목회는 우리 한인교회에서 잃어버리고 잊혀져가는 은혜와 변화의 현장을 다시 붙잡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하셔서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던 생생한 현장을 느끼면서, 목회는 힘들지만, 이곳에 한국적 정서와 애뜻한 순수함과 정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서 한국근대사와 함께 한국감리교회 역사를 태동시키고 이끌어 오셨던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한 생명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발견합시다. 이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한 영혼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소망을 놓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구석지에서 모퉁이에서 하나님이 위대한 변화의 꿈을 키우면서 우리들을 다시 부르고 있다는 깨달음이 제 속에서는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영이 강림하기를 사모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사자와 곰과 양과 어린아이와 표범이 함께 딩굴고 뛰노는 위대한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중국은 돼지이고, 러시아는 곰이며, 미국은 독수리가 아닙니까?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평화의 통일을 이루어내면서 평화의 사도로 주님의 피묻은 복음으로 우뚝서는 그 날이 오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면, 수많은 의인들이, 기도의 사람들이, 말씀의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이 사명의 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다시 부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그 날이 오길, 우리는 오늘도 설레이는 마음으로 함께 열망하며 기다립시다.

 * 2017년 UMC 한인총회 둘째날 저녁 집회때  설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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