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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9/16/15
내가 만난 하나님-김해종 목회회고록<2>
김해종(전 미연합감리교회 감독)

우리 생애는 크고 작은 풍랑이 쉬지 않고 산 하나를 넘으면 또 산이 있는 “산 넘어 산”의 반복 인듯 싶다. 돌아 보건데 내 일생도 다른바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산에서 골짜기에서 우리를 만나 주셨고 풍랑 속에서도 같이 계셨다.

그것이 내가 만난 하나님의 경험이기에 그러한 경험들을 회고하며 우리를 항상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 지면을 통하여 간증하려고 한다.

나의 어린시절은 비교적 평탄하였고 행복하였다.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최고 교육을 받으셨던 부모님 아래서 부자는 아니였으나 아쉬운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의사였던 할아버님의 유복자로 태어 나셨던 아버님은 스스로 유학을 떠나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학을 하시면서 명문대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석사를 취득하신 인테리셨고 어머님은 경성사범을 졸업하시고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최고학부를 마치셨으나 일제시대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로 철도국에 사무원으로 취직하여 차장을 거처 역장의 자리까지 올라가셨다. 겸이포와 진남포에서 어린 시절을 지난 나는 차장이신 아버님이 어머님과 나를 무료기차 여행을 많이 시켜줬던 기억이 있다. 어린애들이 자동차를 타면 즐기듯 어린 시절 기차여행의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렇게 아버님은 철도국에서 일하셨고 해방이 되던 해에는 호남선 고막원 역의 역장으로 계셨고 나는 세정거장 북쪽 나주에 있는 국민학교를 다녔고 그해 4학년이였다. 8월 15일 나의 담임선생님은 온 반 학생들을 뒷동산으로 데리고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일본 황제가 무조건 항복을 했다는 방송을 들었는데 상항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집으로 돌아 가라”고 돌려 보냈고 급기야 집으로 돌아온 후 해방이 확인되어 온 동리 사람들이 거리에 나가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춤을 추는 광경을 보았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독립이 온다는 흥분에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우리 아버님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된 배경을 말씀해 주셨고 자기가 동경에서 공부하실 때 관동대 지진이 일어나 구사 일생으로 살아나신 이야기를 하시면서 무엇보다 무서웠던것은 일본인들이 죽창과 일본도를 휘두르며 몰려 다니면서 조선사람을 색출하여 그 자리에서 죽이는 한국인 학살이였다고 하셨다.

그들의 반한 감정은 한국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리면서 한국 사람을 닥치는 대로 학살한 무시무시한 사건이 일어 났던 것이다. 그때 약 6천명이나 되는 한국인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신사로 피신하여 다행히 신사의 승려의 보호를 받고 감추어 주어 사셨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해방 후 아버님은 서울 용산역 운수과장으로 승진되어 우리는 서울로 올라 왔고 나는 용산 국민학교로 전학하여 공부를 계속하고 이년 후에는 경복중학교 에 입학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 새 정부는 아버님을 등용하였고, 경제기획처 에서 경제 계획관이라는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시게 되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던 해 1950년에는 우리 가족은 여섯 살 아래 남동생과 그 아래 어린 여동생 둘이 생겨 여섯 식구가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님은 이제 그의 실력이 인정 되어 앞으로 교통부 장관의 물망에 오르고 있었고 고등고시 위원으로 활약도 하고 계셨다.

그러나 6월 25일 인민군은 무력 통일이라는 미명아래 남침을 감행 하였고 사흘 만에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를 당하자 미처 피란가지 못한 우리는 인민위원회의 채포대상이 되어 수시로 우리 집은 무장한 대원들에 의해 수색을 당하였고 아버님은 피신하여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고 우리 가정은 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설상 가상으로 미군이 우리를 돕기 시작하면서는 끊임 없는 폭격의 위험속에서 살면서 양식도 없어 때로는 콩가루와 솔잎 가루로 연명해야 하는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삼개월을 지나 9월 27일 에는 아군이 서울을 탈환하는 큰 전투가 시작 되었고 포격과 폭격 그리고 이쪽 저쪽에서 발사하는 총탄을 피하여 집 마당에 만들어 놓은 방공호에서 숨어 살았다. 한번은 우리 집에서 30 미터되는 곳에 폭탄이 떨어졌는데 다행히 불발탄이여서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많은 위험 중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신 것은 우리는 아직 하나님을 몰랐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향한 뜻이 있었던 것이라고 믿으며 항상 뒤돌아 보며 깨닫는 우리는 감사 할수 밖에 없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내가 모르는 동안에도 나와 함께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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