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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1/21/16
[2016년 추수감사절 지상 설교] 감사로 제사 드리는 사람(시편 50:22-23)
김태환(보스톤 케임브리지 한인교회 목사)

시편 50편은 아삽이 쓴 것입니다. 아삽은 다윗이 아꼈던 세 사람의 음악인 중 한 사람입니다. 이 세 사람은 다윗의 요청으로 레위 지파 사람들이 추천한 뛰어난 음악인들이었습니다(역대상 15:16-17).

이 사람들은 비파와 수금과 제금을 연주했던 연주자들이었고, 이 중 아삽은 레위 사람들로 구성된 성가대 지휘자였습니다. 아삽은 제금을 연주하면서 성가대를 인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역대상 16:5).

 

시간은 흘러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로 내려갑니다. 히스기야는 유다의 역사 중에 몇 명 안 되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왕이었습니다. 25살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다윗을 자기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형식화된 제사(예배) 의식을 개혁했습니다. 그리고 제사 의식에 음악을 도입했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성가대의 찬양이 끝난 후에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과 아삽의 시편을 낭독하게 했다는 것입니다(역대하 29:30).

 

아삽은 단순한 음악인이 아니라 뛰어난 영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아삽을 가까이 곁에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삽이 쓴 시편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시편들이 아니라 히스기야가 예배 의식을 개혁 하면서 아삽의 시편에서 많은 영감(靈感)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것들이었습니다.

 

시편 50편을 읽어 보면 곳곳에 참된 제사(예배)는 어떤 것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참된 제사 (예배)는 제물이 중심의 제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삽의 입을 통하여 “나는 너희들이 드리는 제물을 탓하지 않는다(8절)”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무슨 제물을 드리든지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원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삽은 제물 중심의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22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제물, 값비싼 제물만 드리면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 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삽이 살고 있던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물 중심의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물 중심의 제사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 아삽은 제물 중심의 제사는 반드시 형식화 되고 타락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삽을 다윗은 그의 곁에 ''선견자(the seer)''로 두고 있었고, 다윗을 모델로 삼아 제사(예배) 의식을 개혁하려고 했던 히스기야 왕은 아삽이 쓴 시편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면, 아삽이 말하는 참된 제사(예배)는 어떤 제사입니까? 그는 감사로 드리는 제사가 참된 제사라고 합니다(14, 22절). 제물이 중심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예배자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예배자의 마음이 신령과 진정으로 준비되어야 그 예배가 영적인 예배가 된다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4:23-24).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예배자들을 찾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도 아삽의 시편을 생각하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유명한 정신 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1900-1980)은, 명저 ‘To Have or To Be(존재냐 소유냐)?’에서 삶에는 두 가지 양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존재양식(Being Mode)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양식(Having Mode)이라고 했습니다. 소유양식의 삶은 무엇을 소유함으로써 기쁨과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삶의 방식입니다. 반대로, 존재양식의 삶은 무엇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소유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 하는 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말하고, 행복과 불행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생깁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형식적인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삽의 말을 빌린다면, 소유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제물 중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제물 중심의 제사가 형식화 되듯이, 소유양식의 삶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식적인 관계로 전락하게 합니다.

 

그러나, 존재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올리브 나무에 거둘 것이 없고, 밭에 거둘 곡식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 때문에 기뻐하겠습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겠습니다(하박국 3:17-18).”

하박국 선지자의 글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글이 존재양식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잃는다고 해도, 마지막 남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부인할 수 없듯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존재양식의 삶입니다.

 

지금은 크리스천의 삶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크리스천의 책임에 대하여 고민해야 하는 때입니다. 내가 소유양식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존재양식의 삶을 살고 있는지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삽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존재양식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23절).”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giving thanks is a sacrifice that truly honors me. If you keep to my path, I will reveal to you the salvation of God." 직역하면, "감사를 드리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높이는 제물이다. 나의 길을 벗어나지 않고 따라가면 나의 구원을 보여 줄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 감사로 드리는 예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나의 길''입니다. 개역성경에는 이 ''길''이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감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서 행하신 일들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행위를 올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최고의 예배입니다.

 

우리가 사는 보스턴은 감사의 본고장입니다. 우리가 사는 보스턴에서 감사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96년 전, 1620년에 102명의 청교도들이 May Flower를 타고 도착했던 플리머쓰(Plymouth)가 불과 보스턴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습니다. 12월에 도착한 이들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위해서 착한 왬파노액(Wampanoag) 인디언들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왬파노액 인디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부족들이었습니다. 이들 덕분에 청교도들은 낯선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첫번 추수감사절 예배’는 왬파노액 인디언들을 초대해서 드린 소박한 예배였습니다. 비록 소박했지만, 그 예배는 감사로 드린 예배였습니다. 그 예배가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말 중에 "Think and Thank God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자)"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thank라는 말은 “akin to think (think와 유사한 어족)”라고 나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의 이유들입니다. 기쁘고 즐거웠던 일들도, 힘들었던 시간들도, 절망의 순간들도, 생각해 보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끝으로 한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어느 환자의 기도 (The Creed for the Disabled)’라고도 알려져 있고, ‘어느 무명의 군인의 기도(A Soldier''s Prayer-written by an unknown confederate soldier, US civil war)’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출세를 위해서 힘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겸손하게 순종을 배우라고 나를 약하게 하셨습니다.

큰 일을 하기 위해 건강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일을 하라고 나에게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돈을 구했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권력을 원했지만,

하나님만 필요로 하라고 나에게 약함을 주셨습니다.

나의 삶을 즐기기 위해 모든 것을 원했지만,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주셨습니다.

내가 구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가 소망해야 했던 모든 것을 받았고,

내가 원하는 것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말하지 않은 기도들이 응답되었습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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