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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3/30/21
[부활절 메시지]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권혁인(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목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온라인 예배를 드린 지 일년이 지났습니다. 박해를 피해 카타콤과 같은 지하 동굴에서 예배를 드렸던 초대 교인들의 어려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먼지보다 작은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기 위해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지긋지긋한 팬데믹 사태가 언제쯤 종료될 것인지 모르는 막연한 불안감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추운 겨울처럼 얼어붙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파수꾼 이야기처럼, “파수꾼아 밤이 얼마나 지났느냐?, 파수꾼아 날이 새려면 얼마나 더 남았느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합니다. 언제 이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올 것인지 묻는 어느 시인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 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시인의 말대로 우리 인생에는 언제든 틈만 나면 풍파가 비집고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시련은 사람의 조건을 봐가며 오지 않습니다. 인정사정 가리지 않고 다가오는 법입니다. 그래서 파고의 높이나 바람의 세기는 다를지 몰라도 누구나 다가오는 풍파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이는 차디찬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반면, 어떤 이는 잠시 몸을 낮추어서라도 끝끝내 버텨내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사람들 사이에 체감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풍파의 세기가 아니라 사실은 이를 대면하는 자세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도 남아 있는 거리에 좌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온 순간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헤쳐나 갈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찾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의 학자들은 팬데믹 상황을 세계사적 사건으로 간주하여, 지금만이 아니라 재난 이후에도 전 지구가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기도 합니다. 아마 교회도 코로나 사태 이전과는 전혀 색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이 기존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아니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이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모습에 따라 그 방향도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뿐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부활의 소망 가운데 세워진 믿음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도 이겨낸 부활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지난 2천년 간 교회는 늘 절망의 끝에서 다시 새롭게 일어서곤 했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부활을 경험한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 올 위기와 변화도 부활의 소망 안에서 맞이할 수 있는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어느새 성큼 다가 와 서 있는 봄기운을 모두가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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