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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3/09/21
‘미스트롯2’를 보며 찬송가를 생각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인 전재용 씨가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간다는 뉴스를 한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극동방송 김장환 사장님이 직접 TV 인터뷰를 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금년 57세이니 아마도 세컨드 커리어로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모양이다. 교도소에서 2년 8개월을 보내게 되었을 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어느 날 찬송소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교도소 ‘종교방’에서 울려나오던 찬송인데 그 찬송소리를 듣고 갑자기 눈물이 났고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졌고 드디어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 목사님도 찬송으로 은혜 받지 않았는가? 조지아 주 선교사로 가는 대서양 뱃길에서 풍랑을 만났지만 죽을까봐 겁에 질려 있는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풍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찬송에 열중하고 있는 모라비안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왜 내겐 저런 평안이 없는지를 영적으로 파고들어 결국은 1738년 런던 올더스게이트의 회심을 경험한 후 타락한 18세기 영국을 구원하고 그 후에 감리교를 비롯, 성결교, 구세군, 나사렛교단을 세운 결과를 가져왔으니 찬송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비텐베르크가 주거지였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교황청의 소환을 받아 말을 타고 보름스로 내려갈 때 그의 발걸음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었다. 내려가던 길에 소학교 시절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던 아이제나흐에 있는 성 게오르규 성당을 찾아 간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을 추억함으로 아마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절박했던 루터는 주님을 향해 “주님은 강한 성”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탄생된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루터의 파문 후에 그를 지지하는 종교개혁 추종자들의 “18번 찬송가”가 되었다.


구약에서도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찬송을 불렀다. 이스라엘이 찬송할 때 암몬족속과 모압족속이 패망했다. 다윗은 예배 때마다 노래하는 자를 따로 세웠다고 한다. 예루살렘 시온 산에 있는 다윗의 가묘를 들어가려면 황금빛 다윗 동상을 만난다. 그가 들고 있는 건 돌팔매도 아니고 창이나 검도 아니다. 바로 하프. 하프로 하나님을 찬양하던 다윗은 바로 찬송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동상이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예배당 행차 가방 속 2종 세트는 성경과 찬송가였다. 두 개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거의 이단취급이었다.

그런 찬송가가 시방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그나마 대면 예배라고 찔끔 열려도 비말이 튀어나갈 걱정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찬송을 불러야 되는 현실이 되었다. 성가대는 더 심각하다. 언제 복원될 것 같지도 않다. 온라인 대세에 자라 모가지 신세가 되었다. 줌으로 예배를 드릴 경우 성도들의 얼굴은 가끔 스쳐지나가고 목사님의 설교는 확실하게 들려도 회중찬송소리는 한 공간에서 부르는 게 아닌지라 강약조정이 잘 안된다. 아예 찬송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 지다보니 찬밥신세다. 그래서 멸종위기다. 한 인생을 뒤집어 놓기도 하고 인류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하는 찬송가의 위력이 코로나에게 인질로 잡혀있다고 생각하면 죄송하기 짝이 없다.


그럼 그냥 립싱크로 대신한다? 립싱크란 가수를 무대에 세워놓고 노래는 녹음기가 하고 가수는 입만 뻥끗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노래에 영혼이 스며들겠는가?


최근 나는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미스트롯2’란 대중가요 경연프로그램을 보고 감탄했다. 물론 거액의 상금이 걸리고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지만 참가자들의 태도는 너무 진지하고 엄숙했다. 열정과 정성, 노력과 기술의 결정체였다. 한국의 트로트란 노래 수준이 저렇게 훌륭했나? 옛날 프랭크 시나트라나 엥겔버트 험퍼딩크를 수입했듯이 주현미나 나훈아도 해외 수출용이란 생각도 들었다. 경연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표현하는 ‘인생곡’ 미션은 더욱 간절했다. 눈물이 치솟는 대목도 있었다.


나의 인생곡 찬송가는 뭘까?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내 기도하는 그 순간”과 또 하나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로 기억된다. 돈 한푼 없이 덮어놓고 미국 가겠다는 나를 앉혀놓고 송별예배에서 가족들이 불러준 찬송가다. 그때 어머니와 형제들의 간절한 기도찬송처럼 이민광야에서 주님이 나를 지켜 오늘에 이르게 하셨으니 언제 들어도 눈물 나는 찬송가, “주 너를 지키리.”


인생곡이고 아니고 간에 좌우지간 찬송가는 열정적으로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스트롯을 보면서다. 예배당에 가면 립싱크 수준으로 입만 뻥끗대던 뜨뜻미지근한 버릇을 버리고 대면예배가 다시 열리면 미스트롯 경연자들처럼 노래에 영혼이 녹아질 듯 진지하고 간절하게 찬송하리라!
그런 때가 언제쯤 도래하려나? 찬송가 찬밥시대는 정녕 종말을 고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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