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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2/30/20
[신년초대강단] 방주로 돌아오는 비둘기(창세기 8:1-12)
구진모(윌셔연합감리교회 목사)

지난해는 거의 한 해를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생전 처음 겪는 재난과 싸우느라 지금 우리의 마음도, 몸도 많이 지쳐 있을 줄 압니다. 이런 재난을 지나면서 느끼는 것은 아무리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키고, 우주를 왔다 갔다 한다고 하면서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자연을 창조하시고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우리는 교만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실감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노아 때에 40일 동안 비가 내려서 온 땅이 물로 덮였습니다. 그리고 40일이 지난 후 비가 그치고 물이 줄어들면서 노아의 배가 아라랏 산에 걸려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 노아는 배 밖의 상태가 어떠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제일 먼저 까마귀를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본문 7절을 보면 ‘까마귀는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왕래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왕래’했다는 것은 까마귀가 배에 들어왔다 나갔다 한 것이 아니라, 까마귀는 젖은 땅이나 썩은 음식을 먹어도 되는 새이기 때문에 굳이 방주로 돌아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 위를 왔다 갔다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첫번째 까마귀를 날려 보낸 것이 실수였던 것을 안 노아는 귀소본능이 뛰어난 비둘기를 택해서 다시 날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비둘기는 9절에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발붙일 곳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해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10절에 ‘7일후에 다시 비둘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비둘기는 날아 가자 마자 감람나무(올리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그리고 12절에 7일후에 다시 비둘기를 보냈는데 그 비둘기는 다시는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씀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1마리의 까마귀와 3마리의 비둘기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고, 동정이 갔던 비둘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두번째 비둘기입니다. 


첫번째 까마귀는 방주에서 나가니까 온통 먹을 것들이 떠다녔습니다. 상한 것들도 먹을 수 있는 까마귀는 이것이 웬 떡이냐고 즐겁게 날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리고 3번째 비둘기는 아마 날아가다가 금방 마른 땅을 발견하고 감람나무 새싹이 나오는 것을 물고 돌아올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둘기는 나가보니 온천지가 다 말라 있었으므로 굳이 방주 안으로 돌아와서 방주 안에서 주는 먹이를 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두번째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날아다니다가 결국 지쳐서 다시 방주 안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 아마 몇 날 몇 일을 쉴 곳을 찾지 못하고 힘들게 날아다니다가 지쳐서 방주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번째 비둘기는 40일간의 비가 그치자 노아에 의해서 첫번째 까마귀 다음으로 방주 밖으로 날아가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비좁은 공간 안에서 오랫동안 날지 못하고 있던 이 비둘기는 방주 밖으로 나가면 제일 먼저 마음대로 자유롭게 날고 싶었을 겁니다. 제일 먼저 어디로 날아 가고 싶었을까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이 비둘기는 ‘귀소본능’이 뛰어난 새입니다. 아무리 멀리 다른 곳에 놓아도 집을 찾아오는 새입니다.


한국에서 아버님이 목회하시던 교회에 장로님 한 분이 취미로 비둘기를 기르셨는데, 그 장로님 말씀이 제주도에서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대회가 있는데, 자기 비둘기를 제주도에서 날리면 서울 집까지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이 비둘기도 방주 밖으로 날아가라는 자유가 주어 졌을 때 제일 먼저 과거에 살던 집으로 날아 가려고 시도를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주님을 알기 전에 누렸던 즐거움이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과거에 부르던 노래들이 생각이 납니다. 과거에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던 쾌락을 그리워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에서 고기 굽던 생각과 피곤했지만 따뜻한 잠자리에서 자던 그때를 간절히 추억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방주를 나가면 과거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갈 것을 잘 알고 있는 노아가 왜 이 비둘기를 내보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노아가 홍수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세상으로 비둘기를 내보낸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이 광야 같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사단이 욥을 시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께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몰아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그런 광야의 시련을 통해서 더 좋은 결과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번째 비둘기가 홍수로 황폐한 땅 위를 피곤하게 날아본 후에야 그 이전보다도 더욱 방주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비둘기는 이 세상 어디서든지 안식을 찾을 수가 없음을 똑똑히 눈으로 보고 난 후에, 비로소 방주 안에서 노아의 손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보금자리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둠을 주어서 빛의 고마움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시련을 거친 후에 하나님께 매어 달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어려운 시련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평생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방주를 나온 이 비둘기는 날개를 힘차게 펴고 과거에 자유롭게 살며 즐기던 집을 찾아서 날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날다 보니 배도 고프고, 기운은 다 빠지고, 지쳐갑니다. 그래서 좀 먹을 것과 발붙이고 쉴 곳을 찾아 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처음에 방주 밖으로 날아간 까마귀가 이곳 저곳 앉아서 썩은 고기들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비둘기도 그곳에서라도 쉬어 볼까 하고 떠내려가는 짐승위에 앉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냄새가 나서 도저히 쉴 곳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떠내려가는 통 나무 위에도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도 온통 더러운 진흙과 오물투성이라 거기도 쉴 곳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사방으로 쉴 곳을 찾아 날라 다녔지만 어느 한곳도 이 비둘기가 발붙이고 쉴 곳은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이제 점점 날개는 지쳐만 갔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지친 날개를 파닥거리는 비둘기의 모습을 생각해보면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 안식처를 찾아서 방황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한번 그려 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살아보면 좀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을까 해서 그렇게 살아 봤지만 그곳도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저렇게 살면 좀 나아질까 해서 그렇게 살아 봤지만, 거기도 평안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일 저일 해보다가 이제는 마음도 몸도 다 지쳐서 이제는 더이상 날지도 못하고 어느 한 구석에 쓰러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안식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도 하고, 애도 써 보았지만 결국 이 세상의 것들로는 우리의 내적 공허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것들로는 우리의 내적 공허를 채울 수 없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평생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갖추었던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고백한 것이 뭡니까?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비둘기가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날개가 없어서 그렇습니까? 비둘기는 먼 길을 날아 집을 찾아가는 강한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라볼 눈이 없어서 안식처를 찾지 못했을 까요? 아닙니다.  비둘기는 먼 거리라도 찾아갈 수 있는 식별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둘기가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한 이유는 이 새가 비둘기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만일 이 비둘기가 까마귀었다고 하면 발붙일 많은 안식처를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비둘기가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힘들어 했던 것은 비둘기 자신의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비둘기는 성경에서 아름다움(아1:15), 온유함(마3:16), 순결함(마10:16)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닮은 깨끗하고, 정직하고, 거룩한 성품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이 세상의 즐겁고 기쁜 일들을 바라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도 좋은 것,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그것을 즐길 줄 아는 감성이 다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쾌락속으로 뛰어 들어갈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일들에 집착하지 않을 뿐입니다. 마치 비둘기가 썩은 것들이 있었고, 마르지 않은 진흙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붙일 안식처를 찾지 못했던 것처럼, 그런 쾌락이나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안식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절망한 비둘기가 그 다음에 한 일은 무엇입니까? 비둘기는 방주로 다시 날아왔습니다. 우리는 방주로 돌아오는 비둘기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온통 물에 젖고, 진흙에 묻은, 지치고 초라한 날개를 퍼득이며 방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안식처를 찾기 위해 애를 썻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온통 세상의 더러운 먼지로 오염만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둘기는 지치고 오염된 날개를 펼치고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방주를 향해 날아 왔습니다. 비둘기가 아무리 두루 살펴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서 방주로 돌아온 것입니다. 다른 곳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둘기는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가까운 길을 택해서 방주로 돌아온 것입니다.


안식처를 찾지 못한 불안과, 진흙을 뒤집어쓴 날개가 돌아오는 길을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이 비둘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비둘기가 돌아올 때의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친 몸을 가지고 방주로 돌아옵니다. 노아는 온종일 방주를 떠난 비둘기가 오는가 하고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저기서 비둘기가 옵니다. 얼마나 지쳤던지 곧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방주에 미쳐 이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몸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비둘기가 겨우 겨우  방주의 가장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노아는 본문 9절에 보면 “그가 손을 내밀어 자기에게로 받아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잡아 들였다는 것은 비둘기가 더 이상 자기 힘으로 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자기 손을 내밀어 그 비둘기를 받아 주었던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기도하고 싶지만 기도가 나오지 않아요. 내 마음은 마치 납덩어리처럼 무겁고, 내 영혼은 지쳐 있어요. 이제 나 자신도 어떻게 기운을 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주님께 다시 나와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하소연하는 분도 보았습니다.


여러분! 여기 가장 아름다운 복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11:28절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비둘기는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몸도 지쳐 있을 때 자신의 몸을 꾸미거나 다른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비둘기의 생각에는 방주로 돌아가는 길만이 살길이고, 안식할 길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억지로 짜 맞추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무조건 돌아오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질병으로, 긴 펜데믹으로 지쳐 있습니까? 지친 몸 가지고 오세요. 있는 힘을 다해서 나오세요. 먼지 털 것도 없고, 진흙을 닦아내고 올 것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내게 오는 사람을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시리라” 하신 말씀대로 돌아오면 여러분의 지치고 상처 난 영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 받아 주실 겁니다. 비둘기가 돌아올 때 방주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십자가 앞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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