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Logout
818.624.2190
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9/12/20
무르익음의 계절
이창민(LA연합감리교회 목사)

 코로나바이러스가 여러 대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이 된 지도 6개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2020년의 절반을 코로나바이러스에게 빼앗겼는데, 언제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지 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9월을 맞았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암울한 현실에서 오는 불안, 사람과의 접촉점을 잃어버린 채 살아야 하는 쓸쓸함, 바뀐 일상으로 인한 어수선함을 핑계로 어리바리 살다 보니 속절없이 흐른 시간만 원망스럽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을 걱정하는 제게 어느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미국은 더 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언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실업자가 나오고, 소매업체들이 문을 닫고, 큰 회사들도 감원의 칼바람을 예고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어려울 때를 견뎌낸 사업체나 개인, 국가는 더 강한 체질로 바뀌게 될 것이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고난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미국은 또 다른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삶의 자리를 지키는 개인, 더 경쟁력 있는 소매업체, 더 든든한 기업이 떠받치는 더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논리는 미국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청교도들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했고, 낯선 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기회의 땅을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느슨한 것 같은 국가 시스템은 창조적 인재가 자라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이 설 수 있는 모판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는 사이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강해지는 것은 기업이나 국가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강해지는 때는 모든 형편이 평안할 때가 아닙니다. 수많은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던 고난의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때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한 실망과 신앙의 갈등을 지나고 나서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장석주 시인이 쓴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인은 빨갛게 익은 대추 한 알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대추 한 알도 태풍과 천둥, 벼락을 이기고, 늦가을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를 견디고, 땡볕이 내리쬐는 시간을 두어 달 견뎌내야 무르익게 됩니다. 9월은 무르익음의 계절입니다. 대추뿐 아니라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는 때입니다. 황금 들판을 채운 곡식이 무르익고, 각양 과일만 무르익을 때가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무르익을 때입니다.

 

곡식이 무르익으면 여물고, 무르익은 과일이 단맛을 머금는다면, 사람은 무르익을수록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을 통해 무르익음의 지혜를 새겼습니다. 겸손은 나를 낮추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높이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기에 겸손한 사람의 마음은 늘 너그럽습니다. 다른 사람을 높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쓰라린 세월의 흔적을 지나며 쌓인 겸손과 너그러움을 무르익음의 증거로 내세울 수 있다면 코로나바이러스로 뒤바뀐 일상 속에서 어리벙벙하게 지내온 지난 6개월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무르익게 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대추 한 알’을 무르익게 하기 위해 대추나무가 버텨온 고난 이야기에 우리의 인생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사람도 저절로 무르익을 리 없다/저 안에 담긴 실패, 배신, 버려짐, 잊힘/눈물로 지새운 몇 밤/너덜너덜한 구두 몇 켤레/이마엔 송골송골 맺힌 땀 몇 바가지/사람이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천둥, 벼락 몇 백 개/따가운 햇볕, 긴 장마, 가물었던 나날들”

 

세상의 척박함을 견뎌내고 무르익은 곡식과 과일이 풍성한 식탁을 채우듯, 모진 환경을 지나 무르익은 인생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무르익다’라는 말에는 ‘과일이나 곡식 따위가 충분히 익는다’라는 뜻 외에도 ‘시기나 일이 충분히 성숙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상은 여전히 얼루룽덜루룽하지만, 그렇기에 그런 세상을 살면서 의지해야 할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영글어가는 ‘무르익음’의 계절입니다. 

List   

크리스천 위클리
후원교회/기관
The Christian Weekly
621 S. VIRGIL AVE. #260
LOS ANGELES, CA 90005
TEL. 818.624.2190
Email. cweeklyusa@gmail.com
COPYRIGHT © 2015-2020 THE CHRISTIAN WEEK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