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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3/11/20
[지상설교] 믿는 자여 어이할꼬… (출 3: 7)
이창기(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뒤숭숭합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이 질병이 아시아 곳곳으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아프리카로 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불안한 사람들은 사재기를 시작했고, 질병이 퍼진 곳에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확인도 없이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곧 이어 군중들은 공황상태, 혹은 패닉에 빠질 위험성도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정말, ‘곳곳마다 상한 영들의 탄식소리’(새찬송 515장)가 들려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에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것도 급하게 찾으십니다. 어떤 사람을 찾으실까?

첫째, 재난 당한 사람들에게 관심 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재난 당한 사람들보다 재난에 관심을 씁니다. 재난이 어떻게 발생했으며, 어떤 경로로 전염이 되고, 어느 정도의 치사율이 있으며, 앞으로 이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이며, 그리고 이렇게 재난이 만연된 사태에 대해 누가 책임이 있나, 등등 재난 자체에 관심을 쓰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착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강도 만났던 사태에 대해 일언반구 묻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의 상처를 싸매 주는데 관심 있었고 그의 생명을 속히 건지는데 관심 있었습니다. 재난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고통, 그 사람의 생명에 관심 썼습니다.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출 3: 7). “모세야…. 네 동족이 당하는 그 고통을 나도 확실히 보았다.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나도 들었어.”

일찍이 동족이 당하는 압박과 괴로움 때문에 분연히 일어나 애굽인을 때려 죽였던 모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너도 알지? 내 백성들의 당하는 서러움을?… 너도 보았지? 내 백성들의 채찍 맞은 자국들을? 나도 보았어. 나도 정말 보았어…”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처럼, 고난당하는 백성들의 아픔을 아는 사람, 그들의 고난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많은 이들이 재난에 대해 말하며, 누굴 탓하고, 누굴 원망하고 있을 때, 고통당하는 사람의 아픔을 알고, 그 눈물을 알아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믿는 자여 어이할꼬…”

둘째, 누구를 탓하는 사람이 아니라, 재난을 보면서 자신을 탓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선지자 다니엘도 물론 죄인입니다. 그러나 의롭게 살던 그가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죄를 지었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무너진 예루살렘, 황폐화된 예루살렘을 보면서 자기 탓인 양, ‘자신의 죄와 자기 백성의 죄’(단 9: 20)를 자복하면서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단9: 3) 회개하였습니다.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알아 끌어 앉고 회개했던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구속사의 일곱 이례의 계시를 알게 하시는 ‘크신 은총’ (단 9: 23)을 베풀어 주셨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위대한 임금 다윗을 봅시다. 그의 시대에 재앙이 임했습니다.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사흘 만에 7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의 천사에게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삼하 24:17) 저항하였습니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내 백성들을 치십니까? 나를 치십시요. 차라리, 내 식구들을 치십시요.” 백성들을 막아서서 자신을 때려 달라고 대드는 다윗! 다윗은 백성들이 재난을 당했을 때 자신의 책임임을 알았습니다. 사실 다윗은 정말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겼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책임을 모면해 보려고 핑계 대는 오늘 날의 정치 지도자들과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내 백성들을 치십니까? 날 치십시요. 내 식구들을 치십시요.” 이것보다 더 뜨거운 기도가 또 있겠습니까? “믿는 자여 어이할꼬……”

셋째, 옛 선지자과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구원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세 당시 애급에 10가지 재앙이 내렸습니다. 마지막 재앙이 장자들이 모두 죽는 재앙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재앙이 미치질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 13).

양의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지도자들이 재난의 날에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지자들, 믿음의 사람들은 재난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재난에서 피하도록 하였습니다.

에스겔 9: 4절에는 천사가 회개하는 성도들의 이마에 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다음절에서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은 재앙이 해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말씀하셨고(겔 9: 4), 심판하는 사자에게,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겔 9: 5-6) 말씀하셨습니다. 이마에 표 있는 자들에게 재앙이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모름지기 참 선지자들은 성도들로 이마에 인 맞은 자들 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얼마나 될까요? 페스트나 메르스, 사스보다 낮다고 합니다. 치사율이 낮기 때문에 덜 무서운 것인가요?

요한계시록에는 천사들 일곱이 나팔을 붑니다. 일곱째 천사, 곧 마지막 천사의 나팔에 우리 주님 재림하십니다. 천사들이 나팔을 하나씩 불때마다 이 땅에 재앙들이 쏟아집니다. 그 중,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이 땅에 황충의 재앙이 쏟아집니다(계 9장). 해석하기 힘들만큼 난해한 구절이지만, 그러나 언젠가 이 땅에 임할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이 재앙은 치사율이 제로입니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덜 무서울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몇 배 더 무섭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계 9: 6).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하는 것이 더 저주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 계 9: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래서 인 맞아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두 증인들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계 11장). 마지막 때에 두 증인들이 나타나 주의 백성들을 준비할 것입니다.

이 약속을 근거로 해서 또 많은 이단들이 나타나 자기가 두 증인들이라고 저마다 사람들을 미혹하였습니다. 결국 건전한 교회의 목회자들까지 예언의 말씀을 언급하길 주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사단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하나님께서 말세에는 두 증인들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교인들을 미혹해서 헌금 착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함을 입어 성도들을 바르게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 맞아 재앙에서 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세 시대에는 양의 피를 발라 표시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표가 그 심령에 새겨져 인 맞은 성도들도 준비시켜야 될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느 시대든지 재앙 속에서 절망하는 백성들에게 참 소망을 외쳤습니다. 재앙을 당하면, 사람들이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사재기가 나타납니다. 공포가 몰려옵니다. 그래서 평시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싸움이 나고 폭력이 발생합니다. 최근 사태로 유럽의 몇몇 국가들 중에서 중국인들에 대한 ‘묻지 마’ 폭력이 나타났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패닉에 빠지게 됩니다. 공황이 시작됩니다. 사람들마다 제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선지자들은 분연히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참 소망을 전했습니다.

이사야가 그렇고, 예레미야가 그랬고,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선지자들이 재앙의 날에 백성들이 아우성치며 절망할 때에, 홀연히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 소망을 주며 격려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너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기다리고 계신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두려워 떠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힙 2:15].

사람들은 죽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일생동안 마음 졸이며 사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오신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하심이니….” 바로 그런 저희를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멸망과 저주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것이 참 생명인 것입니다.

이번 사태로 교회들이 여러 모임들을 생략하고 가정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두렵고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의 말씀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얼마나 깨끗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음식 먹는 규례, 더러운 것 만지는 규례, 무엇을 말합니까? 당신의 백성들이 깨끗하고 건강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지금도 자기 백성들이 깨끗하고 건강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들이 권하고 정부에서 권하는 규례들을 잘 지켜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려워 떠는 세상입니다. 모두 불안과 공포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이 때에 우리는 고통당하는 사람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면 산다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참 복음이지요: “죽는 것이 끝이 아니야! 영원한 안식이 있어! 예수 믿으면 사는 거야…. 두려워 하지 마!!” 이것이 복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절망의 시대에 복음 전할 사람들을 지금 찾고 계십니다.

“믿는 자여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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