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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1/20/19
닮고 싶은 사람, 마가 요한
김한요(베델한인교회 목사)

바울이 처음 로마에서 투옥됐을 때 마가는 바울과 함께 감옥에 들어갔고, 바울이 두 번째로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는 디모데와 함께 소아시아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참고/디모데후서 4:11).

이는 마가가 바울의 최측근으로 끝까지 옆에서 복음을 위한 동역자로 자리를 지켰다는 반증입니다. 이 모든 일은 마가가 바울과의 불편했던 관계를 극복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자기 삼촌 바나바가 바울에게 리더십을 내주게 되어 인간적으로 섭섭할 수 있었고, 성격적인 면에서 바울과 맞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마가는 바울의 곁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지막까지 찾았던 마가는 바울의 순교 이후에는 베드로 사도의 제자가 되어 함께 바벨론까지 가서 복음 전도를 위해 동역 했습니다. 초대 교부의 전설에 의하면 마가는 베드로를 수행비서처럼 따라다니면서 복음 전도의 현장에서 베드로의 아람어 설교를 헬라어와 라틴어로 통역했다고 합니다.

통역은 고도의 기술입니다. 언어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언어와 함께 그 나라의 문화도 충분히 이해해야 제대로 된 통역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중문화권에 익숙했고 여러 언어를 습득했던 마가는 디아스포라로 살며 헬라어와 아람어를 습득했을 것이고, 예루살렘에서 교육을 받으며 아람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마가 요한이야말로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를 가장 가까이에서 수행하며 배웠던 최고의 실력자일 수 있습니다.

훗날 베드로는 마가를 “나의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마가는 복음을 위한 동역에 꼭 필요한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참고/베드로전서 5:13). 이처럼 바나바 아래서 생활하며 선한 영향력이 무엇인지 알고 저돌적인 바울을 끝까지 희생적으로 섬기면서 깨졌던 관계도 회복하고, 베드로를 수행하며 복음 전파에 실질적인 유익을 끼친 실력자 마가 요한은 모든 복음서의 교과서가 된 마가복음을 썼으며 원자폭탄 같은 복음의 핵을 심는 일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20 문도가 모여 기도하며 성령 강림이 있던 곳을 마가 어머니의 다락방이라 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마가가 마지막에 순교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는 마가기념일(4월 25일)이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며 세운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초대 교부로, 로마의 압제 속에 화형당해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심겨집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자신이 이처럼 먹힐 유월절 어린양이 될 것을 알려 주시며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곳이 마가의 다락방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릴 때마다 복음의 능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롭게 복음전파의 지평을 연 마가와 같은 분이 몹시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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