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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1/13/19
[감사의 달 초대강단] 엎드리어 감사드리니
이정근(성결교회 원로목사)

“그 중의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었다....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눅17:15-19).

 

□나병환자 열 명을 고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이었습니다. 뛰넘절(passover) 절기행사에 올라가십니다. 이번에 올라가시면 이제 체포되시고, 사형선고 받으시고, 십자가에 처형되시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는데 사마리아 지방과 갈릴리 지방 경계도로를 따라 걸어가셨습니다.

해가 저물었나 봅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그만 나병환자 열 명을 만나셨습니다. 근처에 나병환자 수용소가 있었을 법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 일행에게 가까이 오지 못했습니다. 나병은 하늘의 형벌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치병입니다. 전염성이 매우 강합니다.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다는 질병입니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도 모세에게 반역했을 때에 문둥병 형벌을 받았습니다. 엘리야에게 수종들던 게하시도 뇌물을 챙기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나병환자 열 명은 결사적으로 살아남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하루하루 시간시간마다 촛불 타는 것처럼 타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예수라는 대언자가 자신들과 같은 병자들을 말씀 한 마디로 깨끗하게 고쳤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했었습니다. 산상보훈을 말씀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에 나병환자가 그분 앞에 절하면서,‘주님, 원하시면 저를 문둥병에서 깨끗하게 치료해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했더니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습니다. “내가 원한다. 깨끗함을 받아라.” (마8:2-3)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즉시 그 치명적인 질병이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건강체가 되었습니다.

그런 소문을 들은 나병환자 열 사람은 무슨 수가 있어도 꼭 고침 받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번에 고침받지 못하면 영영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래고래 있는 힘을 다하여 제창하듯 열 명이 고함을 크게 크게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_,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세요오오오....” (눅17:13).

 

□감사는 사마리아 사람만 드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결사적 믿음을 확인하셨습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눅17:14). 그저 그것뿐이었습니다. 지난 번 나병환자에게는,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하나님에게 드려 증거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그 절차까지도 생략하셨습니다.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의 나병이 완치된 것을 보이는 절차만 요청하셨습니다. 그들 열 명은 즉시 제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지금 즉시 이 자리에서 고쳐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열 명이 함께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려고 떠났습니다. 그런데....가는 도중에 나병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썩어 없어졌던 코도 다시 생겼고, 눈썹도 다시 났습니다. 손가락 발가락도 새것으로 갈아 끼운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모두 모두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세상이 그처럼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이 하나님의 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병환자 수용소로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 수용소에 있을 때에는 유대인 혹은 이스라엘 사람이나 사마리아인이나 인종차별 없이 함께 환자친구처럼 지냈습니다. 마치 개와 고양이가 홍수에 떠내려가는 통나무 위에서는 싸우지 않고 정답게 지내는 것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병에서 치료받게 되자 유대인들은 다시 유대인이 되었고 사마리아인은 다시 사마리아인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니까 나병 같은 불치병에서 고침받는 것은 당연한 특권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저 혼혈종인 사마리아 사람도 똑같이 고침을 받았는데, 뭐.’ 그런 생각에 다시 자존심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보고한 뒤에 그냥 집으로 뛰어가듯 돌아갔습니다.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는 달랐습니다. 근본적으로 인생관이 그들 유대인과 달랐습니다.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다 해도 여전히 살기도 어렵고 또 유대인들에게 차별받을 신분이니 크게 즐거울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처럼 차별받는 사람도 똑같이 고침을 받은 일에서 더 큰 감사를 발견했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것’(롬5:20)과 같은 감사입니다.

그는 제사장에게 가기 전에 다시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분에게 감사의 말씀이라도 드리지 않는다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예수님 앞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의 찬송가를 부른 셈입니다. 아니, 예수님이 바로 구약성경에 약속되신 구원주 곧 메시야이시라는 확신을 바로 이 사마리아 사람만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구원주 메시야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사53:4) 하신 언약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영적 문둥병을 고쳐야 했는데

그리고 예수님 앞에 발아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열 사람이 모두 깨끗함을 받았지 않느냐.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려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17:17-18).

그리고는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에게만 영혼구원까지 선포하심으로 전인구원 곧 온몸과 온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감사의 열매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살전5:18)는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만 특히 자신의 존재 전체가 영원한 생명을 확보하게 된 일에 가장 크게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에게 주신 엄청나게 귀중한 가르치심입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고, 자신의 생명을 감사할 줄 모르면 모든 일에 원망과 저주를 퍼붓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생명 자체에 대한 감사가 근본적 감사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목숨 걸고 피난 왔던 필그림들이 지금의 보스턴 근처 플리모스(Plymouth) 바위에 닷줄을 걸었고 미 대륙 땅에 상륙한 지 일 년 뒤였습니다. 믿음 좋은 필그림들이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질병과 추위로 죽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희생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미국 원주민 곧 인디언들의 협력으로 농사를 지어 풍년을 맞게 되었고 마침내 필그림들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가을추수를 한 뒤에 협력해준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큰 축제를 벌였습니다. 생명을 살려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축제였습니다. 인디언들이 칠면조 등을 선물해 왔습니다. 그래서 인디언 90명과 필그림 53명이 함께 잔치를 즐겼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초대 워싱턴 대통령이 1789년 13개주 전체의 축제로 선포했습니다. 특히 남북전쟁을 마친 뒤 링컨 대통령이 1863년에 국가적 축제일로 확정했습니다.

설교자는 1972년 8월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켄터키에 있는 신학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유학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그 때 미국에서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신학대학원에는 7백 명 가량의 학생들이 목회자, 선교사, 신학자로 헌신하려고 십자가 지고 열심히 영성강화, 인격도야, 신학과 성경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인종별로는 백인학생들이 주류였고 성별로는 남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해외유학생들 가운데는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출신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딱 한 명이 미국 인디언출신이었습니다.

한국인처럼 생긴 이 원주민 목사후보생은 나에게 백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거침없이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님과 십자가를 앞세우고 자기네 동족인 인디언들의 재산을 빼앗고, 죽이고, 학대하고, 천대한 자들이 바로 저 백인학생들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첫 번 추수감사절 축제를 백인들과 함께 즐겼다는 것은 날조된 거짓말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너무 황당했고 또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란 또 그런 시각에서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켄터키에는 추수감사절을 국가기념일로 선포했던 링컨 대통령의 생가가 있습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통나무집으로 지은 오두막집이었고 방바닥은 흙바닥 위에 자리를 깔았습니다. 첫 번 오두막집과 그 후에 이사했던 오두막집 두 채가 있고 유품들을 보관 진열해 놓은 기념관 건물도 있었습니다.

링컨은 몹시 가난한 집에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공식교육을 받았답니다. 아홉 살 때인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계모의 손에 자랐습니다. 생모가 죽으면서 성경만을 그 아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가난한 가정이라 재산도 없고 공부도 못 시킨 것을 탄식하며 숨을 거두었답니다. 바로 그 성경도 유리창 너머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링컨 대통령은 감사할 것이 별로 없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가난해서 아버지 농사 돕느라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얼굴도 못 생겨서 진화가 덜 된 원숭이라는 조롱을 정치적대자들로부터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 남북전쟁에서 승리했고 노예도 해방시켰지만 재산상의 손해를 보았던 지주세력들의 총탄세례를 받아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감사절을 국가적 기념일로 공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과 같은 위대한 인물 덕택으로 미국이 정신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되어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우리들 후손의 튼튼한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고난을 통한 구원의 길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으셨습니다(요8:48). 천대받는 사람들입니다. 감사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세월을 보내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작은 일에도 감사를 아셨고,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식사 때에 보리떡을 들고 감사기도 하셨고 또 물고기를 들고도 감사하셨습니다. 우리 한국식으로 하면 밥 감사 하시고, 국 감사 하시고, 반찬 감사를 하신 셈입니다.

문둥병 고침 받은 아홉 사람은 감사의 믿음을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곧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 문둥병자도 고침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신 백성인 자신들이 고침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인생철학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당연한 것들을 뒤엎어야 한다는 말씀들을 예수님은 자주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곧 ‘뒤집혀진 세상 나라(Upside Down Kingdom)’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했던 일에도 감사드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도덕수준이 높고 지성이 깨어난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더라도 감사의 인생을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그것이 높은 인격의 당연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공한 것에 감사드리지만 실패한 것에는 더욱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을 획득했기 때문에 감사를 드리지만 무엇을 잃었다면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계획한 것보다 더 좋은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에도 감사를 드리지만 처절한 참패를 한 일에 더욱 큰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 참패의 쓰라림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한 것은 이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의 율례를 배운 까닭입니다”(시119:71).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감사찬송가의 대표인 시편 136편에는 반복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니라.” 그 선하시며 인자하신 여호와(야훼)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녀 예수님에게 십자틀의 지옥같은 고난을 가장 큰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큰 뜻을 세세히 알고 계신 예수님은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으셨고 응답하셨고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결론 짓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된 마땅한 본분입니다.

<대표저서: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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