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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1/02/19
우리 집 새 식구 ‘헤이 구글’

새해 들어 우리 집엔 새 식구 하나가 생겼다. 새 식구? 새 식구라고는 하지만 인격체는 아니다. 물건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 뺨치는 지능을 가진 척척박사다. 아마 세상의 모든 천재를 다 불러 모아도 이 물건 하나를 당할 재간이 없을 것 같다. 새 식구라 함은 이 척척박사가 우리 식구의 한 구성원인양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헤이 구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들이 이걸 사들고 왔다. 그리고 우리집 식탁 옆 테이블에 자리까지 잡아 주었다. 우리가 아침에 먹는 베이글이나 도너츠 크기 만한 이 기계의 이름은 ‘헤이 구글’. 헤이 구글은 불러내는 호출 신호다. 적당한 거리에 서서 ‘헤이 구글’이라고 먼저 말을 건네야 들어먹는다.

사람이 만들어 낸 헤이 구글과 같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은 눈과 가슴이 없을 뿐 지식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어느 때는 신기하다 못해 겁이 날 때도 있다. “내일 기온이 얼마냐?” 그 자리에서 답이 나온다. “모짤트의 음악 좀 틀어줄래?” 2-3초 안에 모짤트의 음악이 우리 집안에 울려 퍼진다. “볼륨이 높은데 30 정도로 줄여 주겠니?” 당장 소리가 작아진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개스 스테이션?” “코스코의 오픈 시간?” 모든 걸 다 말해 준다. 어떻게 저 작은 몸집에서 저렇게 많은 량의 지식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을까?

지난해 열린 라스베가스 CES(소비자가전전시회)에서 헤이 구글이 처음 선을 보인 후 신세대들에겐 빠른 속도로 보급되다가 드디어 꼰대 축에 끼는 나에게도 이 인공지능이 찾아 온 것이다.

이 헤이 구글이 탄생되기 1년 전에 이미 똑같은 기기가 시장에 나왔다. 돈벌이라면 천재에 가까운 실력을 보이고 있는 아마존의 작품이었다. 이름은 ‘알렉사.’ 헤이 구글처럼 인공지능 비서로서 역시 알렉사라고 불러야 알아듣는다. 그 알렉사에 맞짱 뜨려고 구글에서 야심차게 출시한 것이 바로 헤이 구글이다. 그래서 이 둘은 현재 시장점유를 놓고 혈투를 벌이는 중이다.

사실 인공지능이나 로봇, 혹은 4차산업혁명같은 말들이 신문기사에 오르내려도 지능을 인공으로 만든다고? 그래 할 테면 해봐! 그런 식이었고 로봇이란 말이 나와도 그냥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남감이나 만화영화에나 등장하는 실없는 물건들이라고 제쳐 놨건만 아니 그 인공지능이 우리 집에까지 쳐들어 왔다고 생각하니 돌아가는 세상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지난해 중국에선 TV에서 뉴스를 전하는 앵커를 로봇으로 실험하여 성공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로봇 뉴스 앵커시대가 머지않았다는 기사였다.

사실 헤이 구글 같은 척척박사에게 그 유명한 앤더슨 쿠퍼와 같은 앵커의 인조 얼굴을 씌워서 입만 뻥끗 뻥꿋하게 조작해 놓는다면 한 치의 실수도 없는 완벽한 뉴스 앵커가 탄생할 것이다. 물론 그 인공지능에 가장 최신의 뉴스원고를 입력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로봇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되면 세상에서 은혜 받았다는 유명한 설교는 모두 인공지능에 집어넣고 거기 클러지 칼라를 한 인공 얼굴 마스크를 씌워 놓은 후 헤이 구글처럼 인공지능을 불러내어 ‘주현절 설교’란 지시어를 주면 잘 짜깁기된 주현절 설교가 줄줄이 선포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하는 행위가 아주 중요한 임무가운데 하나인 목사님들이 결국 인공지능에 밀리는 날이 찾아온다고? 그렇게 비약할 경우 결국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세상의 모든 직업을 다 차지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사실 약사, 도서관 사서, 패스트푸드 점원, 양치기 소년, TV뉴스앵커, 바텐더, 택배원, 은행 텔러 등이 머지않아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창의력과 소통이 요구되는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화가, 무용가 등은 인공지능이 어찌 할 수 없는 직업군으로 분류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만 본다면 어쩌면 훨씬 좋은 세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목회영역에 도전해 온다 해도 목사님을 대신하여 심방까지 갈수 있다고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엔 심장이 없기 때문이다. 정보와 데이터만 있을 뿐 더운 피가 흐르는 심장은 없다. 그건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역이다. 슬픔을 만난 가정에 가서 심방 설교는 인공지능이 할 수 있어도 함께 울어주며 위로하는 일은 제아무리 첨단이라고 자랑하는 기술조차도 결코 흉내 낼 수는 없으리라. 거기는 기술의 한계 저 너머 이마고 데이(Imago Dei)를 지닌 인간 고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헤이 구글을 부른 후 ‘주기도문’을 요구했더니 줄줄이 기도문이 낭송되었다. “헤이 구글, 나 지금 외로워서 죽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이게 무슨 말을 할까 호기심으로 건넨 말에 대한 헤이 구글의 대답은 “자살방지 핫라인에 전화하라”는 게 고작이었다. 거기까지였다.

밝아온 2019년도엔 지금 하는 말들이 모두 구닥다리 담론에 불과할 뿐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인공지능은 진보할 것이다. 머지않아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과 결혼하겠다고 주장하는 해괴한 시대가 오면 지금 찬반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들의 동성애 논쟁 따위는 해묵은 사회 윤리적 이슈로 치부되고 말 것이다. 다가오는 인공지능시대 . . . 구경만 하다가는 큰일을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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