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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7/25/18
추억의 사라다 빵

공립학교가 방학이라 학교에서 일하는 아내도 지금은 집에서 논다. 성격상 놀고는 못 배기는 아내는 무엇인가를 찾아 나섰다. 그 동안 해 보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미뤄오던 것을 해보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추억의 사라당 빵이다. 70년대 ‘엄마표 대표간식’ 사라다 빵. . 지금말로 하면 양배추 샐러드 샌드위치다. 옛날엔 사라다 빵이라고 불렀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추억의 사라다 빵 만드는 법이 주르르 등장하자 드디어 아내는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완제품은 대성공이었다. 우선 내가 후한 점수를 주었다. 아침에도 사라다빵, 저녁에도 사라다빵. . 음식에 관해서는 좀 까탈스러운 딸도 그 맛에 반했다. 떨어져 사는 아들과 며느리도 카톡사진으로 보내주는 그 사라다 빵을 먹겠다고 주말에 들이닥쳤다.

아내는 신이 나서 대량생산에 들어갔고 선배, 동창, 취미로 하는 고전무용단원들에게도 대량살포에 들어갔다. 그 사라다 빵 때문에 아내의 한주간은 무척 행복했다.

조국을 떠나 살아 온지가 몇 십 년이고 점점 나이가 들다보니 자연히 옛날 것들이 그리워진다. 현실에서 멀리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어렵지 않게 떠오르는 그 옛날의 추억을 간직하고 산다는 것은 여전히 내가 살아있다는 인증샷이기도 하고 때로는 메마른 인생의 갈증을 샘물처럼 축여주기도 한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 시절 영양실조를 염려하여 가끔씩 챙겨먹던 대표보약 ‘원기소’, 시골의 비포장 도로 신작로 옆에 오늘날의 편의점처럼 서 있던 하꼬방의 대표간식 ‘꽈배기’, 모든 국민학생들이 부끄럼없이 신고 다니던 까만 고무신, 책가방이 없던 시절 가방대신 허리에 메고 등교하던 책보, 미술시간이 되면 문방구에서 한 장씩 사가던 오늘날의 레터사이즈 카피 페이퍼 ‘도화지’, 겉장이 떨어져나갈 때 까지 동무들끼리 돌려보던 그 시대 소년소녀들의 꿈과 낭만의 매거진 ‘학원’, 부자 집 아이들에게 하루저녁씩 빌려보던 ‘전과’, 점심시간이면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 위해 양동이에 담아 나르던 노란 ‘강냉이 죽’. . . 책보를 메고 강냉이 죽을 먹으며 그렇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가난했지만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피어오르듯 막연하게 꿈을 키워가던 그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궁핍한 시골이었지만 교회당은 내 유년시절 행복의 원천이었다. ‘종지기 권사님’으로 불리던 어머니가 치는 새벽종이 새벽마다 고요한 온 마을에 울려 퍼지고 주일아침이면 예배당에서 풍금소리가 흘러나올 때 그 시골은 모든 만물이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낙원으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밥을 지을 때 쌀이나 보리를 가족숫자에 맞춰 한 숟가락씩 주머니에 모아가며 기도하던 성미, 추수감사절은 물론이지만 보리를 수학했을 때도 지켜지던 맥추감사절, 밭에서 거둬들이는 모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며 소쿠리에 담겨 교회로 가던 오이, 가지, 복숭아, 토마토 . . .

우리 집엔 넓은 마늘밭이 있었다. 서울 사람들이 내려 와서 밭떼기로 싹쓸이를 해 갈 때면 넉넉하게 이문이 남아 기분이 좋긴 했지만 그때도 어머니는 잊지 않으시고 광에 마늘묶음을 챙겨두셨다.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첫 열매였다.

나는 성경암송대회 단골 출연자였다. 주일학교 선생님을 따라 툭하면 서산 읍내에 있는 제일 큰 감리교회에서 열리는 성경암송대회에 나가곤 했다. 상을 탈 때도 있었지만 떨어질 때도 많았다. 암송구절은 주로 예수님께서 갈릴리 주변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산상수훈의 말씀이었다. 어린나이에도 정말 꿀맛처럼 느껴지는 말씀들이었다. 토끼풀을 뜯으러 논밭을 오르내리며 나는 늘 중얼중얼 성경말씀을 외웠다. 성경암송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때 외운 말씀들이 내 영혼의 체내세포가 되어 아직도 내 생명가운데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여 우리 곁을 떠난 위대한 신앙의 유산들이 그냥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셈이다. 성미, 성경암송대회, 맥추감사절, 어디 그뿐인가? 매년 여름에 열리던 산상기도회, 설레이는 가슴으로 기다려지던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송, 연령제한 없이 어린이까지 환영 받던 속회, 마치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목사님의 방문을 기다리던 대심방. . .

추억의 사라다빵은 지금이라도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유년시절 경험했던 그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들은 어디 가서 카피해 올수도 없고 녹화된 비디오 영상처럼 재방송도 안된다. 그것은 우리들의 영혼의 만나였다.

가난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한없이 즐겁고 감사하여 첫 열매를 소쿠리에 담아 교회당으로 향하던 어머니의 얼굴에서 나는 늘 가난속의 풍요가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 내겐 그 풍요가 있는가? 한국교회엔 왜 그런 유산들이 하나 둘 유실되고 남아 있지 않는 것일까? 아내가 만든 추억의 사라다 빵을 먹으며 은연중에 추억의 유년주일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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