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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교계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7/10/19
장석진 목사 부인, 김송자 사모 출판 감사예배
자서전 출판감사예배에서 장석진 목사, 김송자 사모 부부(가운데)가 축하의 케익을 자르고 있다

<NY> 장석진 원로 목사의 부인, 김송자 사모의 자서전 ‘여인, 뉴욕에 서다’ 출판 감사예배 및 축하행사가 7월 1일(월) 오전 11시 장석진 목사와 김송자 사모가 개척하고 은퇴한 뉴욕성결교회(이기응 목사)에서 열렸다.

‘여인, 뉴욕에 서다’ 발간사에서 김송자 사모는 “당신이 수고를 너무 많이 했고, 당신의 간증이 너무 크니 당신 이야기부터 먼저 발간하자”라고 재촉한 장석진 목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날 주인공은 김송자 사모였고, 장석진 목사는 아내가 돋보이도록 배려하여 인사조차 하지 않았지만, 공동의 주인공은 장석진 목사였다.

축사를 한 김용걸 신부는 “뉴욕교계에서 사모님이 자서전을 낸 것도 드물고, 더욱이 목사에 앞서 사모가 자서전을 낸 것은 더욱 드물다”라며 “아내를 배려한 장석진 목사님의 넓은 아량과 배려와 배품이 오늘날 뉴욕성결교회를 든든히 서게 했고, 가정이 평화롭게 만들고, 몸도 건강하게 했다”고 축사를 했다.

1부 감사예배는 인도 이기응 목사, 기도 김연규 목사(뉴욕비젼교회), 찬양 황진호 집사(뉴욕성결교회 지휘자), 설교 이용우 목사(미주성결교회 중앙지방회 회장), 축도 정창수 목사(뉴저지은퇴목사회 회장)의 순서로 진행됐다. [아멘넷 뉴스]

 

[독후감] <여인, 뉴욕에 서다>를 읽고

자서전이란? “지금까지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 즉, 한 개인에게 허락한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공간 안에서 살아온 삶 여정을 살펴보고 지나간 사건들을 회고하며 자신의 삶의 과정을 진솔하게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왜냐하면 각각의 살아온 삶을 어떤 시각에서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의미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김송자 사모님의 자서전은 그 제목부터 범상치가 않습니다. <여인, 뉴욕에 서다> 제목에서 느끼는 뉘앙스가 도전적이고 자서전 치고는 매우 궁금증을 일으키는 새로운 어프로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인, 뉴욕에 서다>의 자서전이 가지는 몇 가지 주제/단어들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그 의미를 정리해 보고 특별히 저자의 삶의 후반부에는 어떠한 신앙적인 변화와 성숙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여인, 뉴욕에 서다>에서 ‘여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굳지 여인이라는 단어를 왜 사용 했을까? 김송자라는 한 개인이 뉴욕에 이민 왔다는 내용인데 그렇게 말하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인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여성으로서, 목회자의 사모로서의 여성, 그리고 당시 가난한 나라의 간호사로서, 더 나아가 미주 한인 이민의 개척자들로서 당당히 세계의 중심지인 뉴욕의 새로운 무대로 도전해 나가는 강인한 한인 여성들을 대표하는 의미를 내포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서전의 제목부터 마치 인천상륙작전을 연상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맥아더 장군, 드디어 인천에 상륙하다! 군인정신 못지않게 무섭고 담대 한 게 196-70년대의 한국의 간호사들의 해외로 향한 개척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그때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기 때문에 남자들은 광부로 여성들은 간호사로 독일 미국 호주등지로 어디든지 개척해 나가는 의지의 한국인들이었지요.

또한 여기서 ‘여인’ 이라는 단어의 매력적인 의미는 시대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고 봅니다. 21세기 Post- Modernism 시대는 Key Word가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옮겨가고 있는 시대이지요. 남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일단 리더쉽이 일방적이고 단순 심풀 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을 이시대의 남성들은 알아야 합니다.

시대가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힘을 바탕으로 이끌어 왔던 남성중심의 리더쉽은 매력을 잃어가고 이제는 섬세하고 친근성이 있으며 섬김과 배려가 있는 여성성이 중심이 되는 리더쉽이 대세가 되어 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포스트 모던이즘 시대의 가치들도, 이성보다는 감성이, 권위보다는 섬김이, 전체보다는 개체가 집단보다는 개인이…등등으로 시대정신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시대적인 흐름이며 요청이고 그 흐름은 교회도 예외일 수가 없지요.

두번째로 우리 눈에 띠는 것은 <여인, 뉴욕에 서다>에서 “뉴욕에 서다”라는 개념입니다. 그냥 “여인 뉴욕에 오다” 라거나 “아무개가 뉴욕에 도착하다”라는 표현보다는 <여인, 뉴욕에 서다> 라는 표현이 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입니다. 마치 보스턴에 있는 Plymouth Rock을 연상 케하는 표현이지요.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Mayflower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지금의 Plymouth 항구에 처음 도착하여 배에서 내릴 때, 그 바위에 첫발을 딛고 “청교도들 드디어 신대륙에 서다”라며 처음 신대륙에 도착한 것에 대한 그들의 신앙적인 강한 의지 내지는 감사를 기념하기 위해 1620이라는 년도를 바위에 새겨 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마침내 ‘누가 어디에 서다’ <여인, 뉴욕에 서다!>라는 표현 속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자신만의 감격과 감동이 의지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가지고 어디를 향하여 간다고 했을 때 그 목적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청교도들과 미국의 아메리칸 인디언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중학교 교과서에 보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수천년 전에 아시아에서 알라스카를 건너 먹이 사슬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와서 정착하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적어도 그들에게는 청교도들처럼 신앙적인 거룩한 의지나 목적 없이 이땅에 그냥 먹이 사슬로 온 것이지 그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미국은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세우기 위해 거룩한 의지를 가지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건국한 나라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가치와 중심을 어디에 두고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떤 목적과 뜻을 가지고 살 것인가? 이것은 우리 모든 신앙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로 저자는 ‘삶의 중심’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자기 자신이 서울의 ‘종로’에서 태어났다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로는 한국 사회의 모든 것, 즉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흐름이 서울의 한 복판인 종로를 중심으로 조선시대부터 근대에서 현재까지 중심이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식사하실 때에 혼 밥을 하지 않으시고 식탁에 인종과 신분을 초월하여 죄인들 세리들을 초청하여 함께 식사하시면서 말씀을 전하기도 하셨습니다. 식탁에 초청하여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말씀도 주시고 생활에 새 힘과 용기를 주시기도 하셨지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천국 잔치에 비유하여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천국을 주님과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는 잔치음식을 나누는 곳으로 비유하시기도 하셨지요. 식탁 공동체를 통한 주님의 ‘식탁사역’은 ‘말씀사역’, ‘치유사역’과 함께 사역의 중요한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성서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의 마지막 장면은 주님의 식탁 Ministry에 Highlight 로서 아주 환상적인 장면이 나오지요. 십자가의 주님을 배신하고 갈릴리바다(혹은 디베랴 바다)로 도망가 밤새도록 허탕 치며 그물을 내리며 절망하고 있는 베드로를 위하여 그 아침 해의 황금 물결치는 바닷가에 숯불을 피워 놓고 떡과 생선을 구워 Breakfast 식탁을 준비하는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주님이 십자가에서 힘들었을 때 가장 뼈아픈 배신을 하고 도망간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은 꾸짖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절망의 바닷가에서 새 힘과 새 사명을 주시기 위하여 분주하게 떡과 생선을 굽고 아름다운 아침식탁을 준비하고 계시는 어머니 같은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저자의 ‘식탁사역’은 주님의 ‘식탁공동체’사역을 실천한 것이며 그의 섬김의 식탁은 ‘내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한 사모로서 Ministry였고 설교였던 것입니다.

끝으로 지난 40년간 이민목회 사역을 하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갈등 분쟁, 또는 이민목회의 어두운 면이 있었을텐데 아마도 저자는 그러한 어렵고 어두운 면 들 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민 목회안에서 나타나는 표현 할수 없는 많은 목회 아품들, 숨겨진 눈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뉴욕 성결교회의 목회현장에서 어떻게 살아 역사하셨는지 이러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목회 현장의 다이나믹하고 생생한 글들은 앞으로 나올 장석진목사 님의 글을 통해서 기대해 봅니다.

 

 

 







이재덕 목사(뉴저지 티넥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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